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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직시해야 할 지점은 현재 세수 증가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 호황의 취약성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대 등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반도체 편중 구조로 인해 일종의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을 겪을 가능성에도 유의할 것을 조언했다. 1960년대 네덜란드가 북해 유전의 발견으로 일시적인 수출 호황을 누렸으나, 결과적으로 자국 통화 길더의 가치 급등으로 타 제조업의 수출이 무너져 경기 침체를 겪은 것처럼, 비록 환율 상황은 다르더라도 특정 산업에만 의존하는 경제 체제가 착시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도체 사이클(Silicone Cycle)에 기댄 세수는 세계 경기 둔화나 공급망 재편 등 외부의 충격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변동성 높은 임시 재원을 영구적인 고정 지출이 수반되는 복지나 대형 국책 사업의 재원으로 삼는 것은 재정 건전성의 파탄을 예약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정부가 세금을 거두고 집행하는 과정 자체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효율성과 경제적 왜곡에 있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석학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지적했듯, 정부가 시장의 모든 지식을 완벽하게 파악해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치명적 자만(The Fatal Conceit)'이다.
경제학자 아서 오쿤은 정부의 재정 재분배 정책과 대규모 집행 과정을 두고 "물을 구멍 난 버킷에 넣어 옮길 때 누수가 발생한다"는 유명한 비유를 남겼다. 민간이 자신의 돈을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집행할 때의 효율성에 비해, 관료 조직을 거치는 예산은 징세 비용, 관료 기구 유지비, 심사 및 배분 과정의 행정비용이라는 거대한 거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버킷의 물은 필연적으로 새어 나간다.
정부가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집행하는 행위는 단순히 부의 이전이 아니다. 시장의 자율적인 가격 메커니즘을 손상시키고, 민간의 투자 및 소비 인센티브를 억제하여 경제 전체의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을 증대시킨다. 다시 말해, 민간이 스스로 판단하여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정부라는 거대 관료의 자의적 기획과 정치적 논리에 의해 잠식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진정으로 이념을 내려놓고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발상한다면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까. 바로 반도체 호황으로 인해 한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를 정부의 버킷에 담아 옮기느라 물을 새게 하는 대신, 현재 극심한 내수 부진을 겪고 있는 민간 부문에 직접 돌려주는 과감한 '역발상 정책'이 그 대안이다. 즉, 초과 세수를 예산팽창의 불씨로 쓸 것이 아니라, 고금리와 고물가로 신음하는 소상공인, 영세 중소기업, 그리고 한계 소비성향이 높은 취약 계층에 한시적인 '세금 감면 및 면제' 정책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발상은 경제학적으로 매우 뚜렷한 기대 효과를 지닌다. 정부가 예산을 편성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앞서 언급한 '구멍 난 버킷'의 경로를 거치며 행정비용을 낭비하고, 정작 지원이 필요한 곳에 제때 도달하지 못하는 시차(Lag) 문제를 낳는다. 반면 민간의 세금 자체를 줄여주는 방식은 징세와 집행에 드는 행정적 낭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민간 경제 주체들이 늘어난 가처분소득을 가장 시급한 곳에 직접 지출하게 함으로써, 시장의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에 의한 자원 배분을 달성할 수 있다. 한계기업에는 단기적인 유동성 확보의 숨통을 틔워주고, 소비자에게는 실질 소득 증대를 통한 소비에 따른 내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관건은 현 정부가 '소득재분배'라는 이념적 관성을 탈피하고 이러한 실용적 역발상을 수용할 수 있는가다. 예산을 쥐고 흔드는 것은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강력한 권력이자 생색내기 좋은 수단이다. 이를 스스로 내려놓고 시장의 자율성에 지출 권한을 반환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이념적 유연성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간 기업의 창의적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게 한낱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반도체 착시가 가져다준 지금의 세수 호황기를 민간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감세의 골든타임'으로 삼는 대안을 검토하기 바란다.
구멍 난 버킷으로 물을 나르며 생색을 낼 것인가, 아니면 물통의 물을 민간이 스스로 목마른 대지를 찾아 직접 뿌리게 할 것인가. 실용을 표방하는 정부의 시험대가 여기에 있다.
김이석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