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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 주기와 반도체 사이클: 3대 메가프로젝트 성공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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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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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성균관대 교수
김영한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지난 6월 29일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이를 집권 2년차 이재명 정부의 대표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호남지역에 800조원 규모의 초대형 메모리 팹 4기를 건설하고, 충청지역을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패키징 거점으로, 영남지역을 피지컬 AI와 소부장 공급망 허브로 육성해 총 1500조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동원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6일에는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광주 군공항 부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로 확정됐다. 대통령은 "오직 속도전이 중요하다"며 환경영향평가 기간 단축과 협의취득·강제수용 절차의 동시 진행을 주문했고, 청와대에 전담기구를 두어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야당의 이런저런 비판에는 "협조는 못 하더라도 방해는 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수도권 일극 체제가 구조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진단, 그리고 재생에너지 잠재력과 가용 부지가 풍부한 서남권에 새 성장축을 놓겠다는 균형발전 정책 의도는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정책 의도가 아니라, 정책의 입안 및 집행 방식이다. 모든 공공정책, 특히 대규모 정책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정책 검증 과정을 정치적 저항으로 규정하며 밀어붙이는 현재의 위태로워 보이는 정책 드라이브는 다음 세 가지 구조적 위험에 대한 점검이 필수적이다.

첫째, '집적경제 효율성(agglomeration efficiency)'의 훼손 가능성이다. 반도체 경쟁력의 원천은 개별 공장이 아니라 용인·평택·이천에 수십 년간 형성된 연구개발, 소부장, 전문인력이 집적된 생태계다. 생산 거점을 국토 서남단으로 분산하는 결정은 자칫 이 생태계의 복제가 아니라 분할로 귀결될 수 있다.

둘째, 반도체산업의 특성인 빅 사이클 리스크다. 반도체는 2018∼2019년, 2022∼2023년의 급락이 보여주듯 수요 변동성이 극심한 산업이다. AI발 특수가 정점을 지나 하강 국면이 팹 완공 시점과 겹칠 경우, 정치 일정에 맞춰 서둘러 추진된 수백조원의 설비투자는 공급과잉과 기업 재무 부담으로 돌아온다.

셋째, 의사결정 구조의 경직성이다. 합리적 우려까지 정파적 공세로 치부하는 순간, 정책 오류를 조기에 교정할 피드백 회로가 차단된다. 기업의 자발적 결단이라는 주장 뒤에 정치적 압박이 작동했다는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것도, 투자 규모와 시점이 시장 논리가 아니라 정치 일정에서 도출됐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처럼 광범위한 사회적 우려를 고려하여, 향후 초대형 프로젝트의 집행 단계에서 경제적 및 사회적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가 추진하는 인프라건설의 속도전과 기업 차원에서의 설비투자의 유연성은 분리돼야 한다. 초대형 프로젝트의 건설부지 조성과 전력·용수 공급망 등 회임기간이 긴 선행 인프라는 정부가 최대 속도로 구축하되, 팹 생산장비 투자와 생산 개시 시점은 기업이 글로벌 수급 사이클에 맞춰 조절할 수 있도록 투자 단계별 유연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건설부지 확정과 착공이라는 정치적 성과는 정부가 가져가더라도, 수백조원의 설비투자 시점과 구체적인 생산전략 결정은 시장과 기업이 정하도록 역할을 나누는 것이다. 군 공항 이전이라는 선결 과제의 지연 위험까지 감안하면, 이러한 단계적 설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둘째, 메가 프로젝트의 투자 입지 결정을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결정하고 지정했다면, 이에 따른 추가적인 비용과 경제적 부담은 국가가 흡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즉 정부가 강제한 비수도권 투자에 대한 차등적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K칩스법 등으로 제도적으로 명문화하고, 전력·용수 인프라는 기업 착공 이전에 국가 재정으로 완비해 투자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첨단 공정에 필수적인 대용량 전력망과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공급 체계의 구축은 서남권 입지의 잠재적 강점을 실질적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관건이다.

셋째, 인력 생태계 없는 반도체 팹은 원천적으로 작동이 불가능하다. 수도권 인재의 상주 이전을 강요하기보다, 광주와 수도권 연구 거점을 오가는 이중 거점 근무 모델을 뒷받침할 고속교통망 확충, 이전 인력에 대한 소득세 감면, 지역 거점대학과 연계한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 육성 등 다양한 인력 양성 정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수도권의 복제가 아니라 특화된 확장으로 설계돼야 한다. HBM 등 차세대 메모리에 특화하고 충청의 패키징·AI 데이터센터 수요와 직결되는 역내 가치사슬을 구축해서, 수도권 의존도를 낮추면서 메가 프로젝트 삼각축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할 것이다.

다섯째, 향후 정기적으로 열릴 메가 프로젝트 관련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속도전을 채근하는 장이 아니라 반도체 시장의 글로벌 수급 점검의 장으로 운영해야 한다. 시장 상황에 연동해 투자 로드맵을 조정하는 독립적 평가 장치를 두어, 정치적 일정이 시장 상황을 압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산업분석 전문기관들의 정기적 수급 전망 보고를 제도화해서 투자 속도 조절의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여, 정부와 기업 모두 시장 상황에 따라 필요한 궤도수정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유연성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의 시간은 5년 단임의 시계로 흐르지만, 반도체의 시간은 경기 사이클의 리듬으로 흐른다. 메가 프로젝트가 '임기 내 착공'이라는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역사적 성과로 남으려면, 메가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의 배제가 아니라 비판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그 기본은, 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한 공공투자 속도전은 정부의 몫이지만, 설비투자와 생산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여 기업이 결정하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김영한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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