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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 블록화 시대, 한국의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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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0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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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만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기술 혁신의 단계를 넘어 국가 안보와 전략 자산화의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이 엔비디아의 첨단 AI 반도체 대중국 수출을 통제한 데 이어, 이제는 프런티어 AI 모델의 가중치,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접근권까지 안보의 관점에서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역 장벽이 아니다. 최고 성능의 AI 모델, 반도체, 데이터센터를 국가 안보 자산으로 규정하고, 미국이 정한 기준을 따르는 일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에만 선별적으로 기술 생태계를 개방하는 블록화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 기술 인프라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이러한 흐름에 취약하다. 타국의 행정명령 한 줄로 핵심 AI 모델이나 클라우드 접근이 제한된다면, 이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공서비스, 금융, 스타트업 생태계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을 국내 기술로만 해결하겠다는 폐쇄적인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다. AI는 본질적으로 글로벌 기술 생태계 속에서 발전한다. 다만 특정 국가나 기업의 인프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분명한 전략적 위험이다. 한국이 독자적인 AI 모델, 반도체, 데이터센터 운용 역량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기술 자립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글로벌 협력 속에서도 협상력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일 수 있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축으로 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은 의미가 있다. 반도체는 AI의 계산 자원이고, 데이터센터는 AI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가동시키는 기반이며, 피지컬 AI는 AI가 제조업, 물류, 국방, 돌봄 등 현실 세계로 확장되는 통로다. 이 세 축을 따로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묶겠다는 방향은 합리적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초대형 산업정책은 언제나 정치적 배분 논리와 지역 나눠먹기의 유혹을 동반한다. 반도체는 어느 지역, 로봇은 어느 지역, 데이터센터는 어느 지역이라는 식으로 정치적 균형만 맞추다 보면 산업 경쟁력이라는 본래 목적이 흐려질 수 있다. 전국에 하나씩 나눠 주는 산업정책이 아니라,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몇 개의 강력한 축을 만드는 산업정책이 되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긴 시야에서 지속 가능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정부의 역할도 민간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R&D다.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고 긴 시간이 필요한 원천기술 개발은 단기 수익과 시장 압박에 매여 있는 기업이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지난 50년간 한국의 정부 R&D는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정부가 선진국을 따라잡는 데 필요한 전략 기술을 선정하고, 출연연과 기업이 이를 상용화하는 방식은 추격형 성장 단계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한국이 이미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지금, 정부 R&D의 무게중심도 응용·상용화 중심에서 기초연구와 원천기술 중심으로 일부 이동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R&D의 성패를 단기 성과에 따라 평가하는 점도 문제다. 3년 안에 성과를 내라는 과제, 당장 상용화 가능성을 보여 달라는 압박, 유행하는 분야에 예산이 몰리는 관행은 진짜 혁신을 어렵게 만든다. 정부가 출연연을 단기 과제 수행기관처럼 운용해서는 안 된다. 출연연은 기업이 당장 하기 어려운 장기, 고위험 원천기술 개발의 메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 지속되는 대형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대학에 대한 기초연구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대학 R&D 투자의 상당 부분은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의 인건비로 쓰이며, 이는 결국 고급 인재 양성으로 이어진다. 기초연구는 단기간에 상용화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실패는 단순한 낭비가 아니다. 학생들은 종종 실패로부터 배운다. 학생들의 이러한 경험은 훗날 새로운 기술 도약의 씨앗이 될 수 있다.

AI 경쟁의 본질은 모델과 반도체의 경쟁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결국 기술과 사람이 있다. 최고 수준의 연구자, 엔지니어, 데이터 과학자, 로봇 전문가, 반도체 설계 인력이 충분히 길러지지 않으면 아무리 큰 프로젝트를 발표해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결국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도 시설과 장비의 규모뿐 아니라, 이를 설계하고 운영하고 다음 단계로 발전시킬 기술과 인재의 육성 여부에 달려 있다.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한국에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성패는 발표 자체가 아니라 앞으로 10년, 20년의 실행에서 갈릴 것이다. AI 패권 경쟁이 안보 경쟁으로 전환되는 시대에, 기술 자립의 기반을 갖춘 국가만이 협상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한국이 그 자리에 서려면 지금부터 장기 투자를 통한 원천기술 축적, 고급 인재 양성을 시작해야 한다.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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