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손수연의 오페라산책] 국립오페라단 ‘피터 그라임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622010007194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06. 22. 08:12

구글 검색 선호 출처 추가 Google 검색에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주인공으로 자리한 음악극
20260617_국립오페라단_피터 그라임스_드레스 리허설_021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이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를 공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한국에서 '피터 그라임스'가 선보인 것은 상당히 오래된 일이다. 1979년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내한 공연을 했던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 '토스카', '마술피리'와 더불어 자국 오페라인 '피터 그라임스'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렸다. 주역 성악가, 합창단, 무용단, 오케스트라 등등 약 320명이 내한한 대규모 공연으로, 콜린 데이비스의 지휘와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토스카), 테너 호세 카레라스(카바라도시), 바리톤 잉바르 빅셀(스카르피아) 등 초호화 출연진이 출연한 오페라 '토스카'나 소프라노 이본 케니(파미나) 등이 활약한 '마술피리'도 큰 화제를 모았지만, 그 사이에 '피터 그라임스'를 9월 12, 13일 이틀간 공연해 우리 오페라계에 신선한 충격을 남겼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이 오페라의 공연이 '낭만주의 오페라에서 갑자기 사실주의 감흥을 알려주었다며, 한국 오페라 공연사에 값진 기록을 남겼다'라고 평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당대 피터 그라임스 역할의 최고 해석자 중 하나로 꼽혔던 테너 존 비커스와 콜린 데이비스 지휘의 앙상블은 음악적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고 전한다.

1979년 내한 공연은 엘리야 모신스키의 1975년 로열오페라하우스 연출 데뷔작으로, 그라임스 개인의 비극보다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하는 폭력성에 집중했다. 이 프로덕션은 이후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의 재현에 있어 어떤 이정표로 작동하게 되는데,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공연 역시 모신스키의 해석에 영향받은 듯하다. 1979년의 우리 관객들은 낯선 형식의 사회비판적 영국 오페라를 생경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2026년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0260617_국립오페라단_피터 그라임스_드레스 리허설_115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지난 18~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려진 '피터 그라임스'의 연출을 맡은 쥘리앙 샤바는 이 오페라가 리얼리즘과 시적 환상이 교차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공연에는 두 개의 세계가 동시에 펼쳐졌는데, 병렬이 아닌 순차적으로 전개됐다. 전반부는 사실적 묘사로, 후반부는 기묘한 추상의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보였다. 무대는 회전을 많이 사용하면서 바닷가와 배, 마을의 공간을 오갔고 초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바다를 상징하는 의상을 유니폼처럼 입고 있었지만 비교적 사실적 표현에 충실했다. 반면 마을 사람들의 불안과 가학성이 고조되고 그라임스의 고립이 심해지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거대한 피터 그라임스의 꼭두각시 인형, 부패한 듯한 물고기 탈, 죽은 아이들의 혼령 등등 상징적 장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작품의 결이 달라졌다.

배 모형의 거대한 구조물이 지배하던 무대 또한 마지막에는 세트를 치워버리고 안쪽 깊숙이 펼쳐진 공광한 공간에 강한 조명으로 바다로 사라져가는 피터 그라임스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추상적 장치들은 아마 극도의 긴장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작품 중간에 연출의 어조와 분위기를 바꾸고, 그로 인한 혼란을 불러오면서까지 필요한 것들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연출의 말대로, '규범이 개인을 짓누르는 잔혹한 사회'를 그려내려 했다면 감정의 발산은 음악에 맡기고, 일관되게 사실적이고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4개의 바다 간주곡 역시 메시지 전달에 대한 강박을 내려두고, 작곡가의 의도를 살려 음악이 말하도록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20260617_국립오페라단_피터 그라임스_드레스 리허설_256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이날의 완성도는 음악이 담당했다. 알렉산더 조엘이 이끄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주역 성악가가 아닌,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주인공으로 자리하는 음악극을 훌륭하게 완성시켰다. 지휘자는 이 오페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과 군중, 인간과 자연이라는 대립이라는 이 작품의 핵심을 섬세하게 나눠서 표현했다. 파사칼리아를 통해 불안한 인물의 심리와 강한 긴장감을 예민하게 그려냈고, 거칠고도 박진감 넘치게 리듬을 살려 바로 곁에서 움직이는 듯한 바다를 연주했다. 성악가들 또한 자연스러운 영어 딕션과 연기력으로 기악이 주도하는 음악적 심리극에 힘을 보탰다.

이 오페라는 1945년 6월 7일, 제2차 대전 막바지에 영국에서 초연됐다. 집단주의를 향한 공포도, 아웃사이더로서 벤자민 브리튼이 평생 감내해야 했을 고통도 이 작품에 들어있다. 작곡가 서거 50주기이자 작품 초연 8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가 포착한 인간의 고립과 소외는 진행형이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