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강화냐, 전략 설계냐’ 시험대
대만해협·남중국해 격랑… 동맹 의존 넘어 ‘국가 패키지 전략’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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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인도·태평양 전략 전문가이자 대중(對中) 전략가인 잭 쿠퍼는 최근 분석에서 이를 "군사력은 남았지만, 전략 통합은 약화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그는 포린어페어紙(Foreign Affairs)의 2026년 3·4월호에 실린 "Asia After America(미국 이후의 아시아)"에서 미국이 군사력은 유지했으나 경제 전략 부재와 정책 일관성 부족으로 아시아에서 구조적 우위를 잠식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포린어페어紙는 미국 외교·안보 엘리트의 '의제 설정紙'로 잘 알려져 있다. 1922년 창간 이후, 미 국무부·국방부·백악관 NSC, 의회, 워싱턴D.C.의 수많은 싱크탱크, 학계 인사들이 기고·인용하는 대표 정책 저널, 정책 아이디어가 처음 공개·논쟁되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미국의 철수'가 아니라, 전략의 공백과 지속성의 불확실성이라고 쿠퍼는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탈퇴 이후 인태지역 역내 경제 질서 설계에서 한 발 물러섰고, 행정부 교체 때마다 대중 전략의 강조점이 달라졌다. 동맹국들 입장에선 "위기 시 개입은 확실하지만, 장기 설계는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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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는 이를 "미국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구조를 먼저 장악하는 접근"이라고 평가한다.
이 격랑의 중심에 대한민국이 서 있다. 안보는 한미동맹에 기반하고, 경제는 중국과 깊이 얽혀 있다. 반도체·배터리·AI 등 전략 기술은 미·중 경쟁의 핵심 축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특히 지정학적으로 대만해협과 한반도가 연동되는 구조에 놓여 있으며, 대만 유사시는 단순한 역외 분쟁을 넘어서 해상교통로(SLOC) 차단이라는 곧 한국 경제의 동맥을 치명적으로 조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18일 인터뷰를 통해 강조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허재철 연구위원의 보고서(2023-02-22)에 따르면, 대만해협을 통과하거나 인접 해역을 지나는 항로가 한국 전체 해상운송의 33.27%를 차지한다. 즉, 한국 수출입 화물의 3분의 1이 사실상 이 바닷길에 걸려 있다는 의미다.
KIEP는 대만해협 항로에 문제가 생길 경우(주요 자원·제품만 고려해도) 하루 약 4,452억 원 경제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한편 정성장 부소장은 대만 사태에 대해 항로 보호를 위한 한국의 직접 개입은 중국과의 경제·군사적 충돌 위험을 키우며, 동시에 북핵 변수는 미·중 경쟁의 틈을 활용해 한국에 대한 전략적 도발 수위가 극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인가, 아니면 '국익을 위한 전략적 설계를 주도할 수 있는 국가'인가.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전문가인 쿠퍼의 분석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동맹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의 미래를 지킬 수 없다.
군사력으로 전쟁을 막을 수는 있어도, 경제 질서와 산업 구조까지 지켜주지는 못한다. 결국 승부는 총이 아니라 공급망·기술·산업 경쟁력에서 갈린다.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는 국가 전략이 없다면, 한국은 미·중 경쟁 속에서 점점 불리한 위치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안보는 동맹으로 지키되, 국력은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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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한미동맹의 질적 심화다. 방위 공약을 넘어 해양·미사일 방어·우주·사이버 영역까지 통합한 공동 전략 설계가 필요하다. 억지력을 다층화해 회색지대 위협에 상시 대응해야 한다.
둘째, 경제·안보 패키지 전략 구축이다. 공급망 동맹을 강화하고 전략 기술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K-방산은 단순 수출 산업이 아니라 전략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산업과 안보를 분리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셋째, 해양 중심 사고 전환이다. 말라카 해협~남중국해~대만해협은 한국의 생명선이다. 원해 작전 능력, 잠수함 전력, 해상초계, 무인체계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인도·태평양 다국적 훈련 참여 역시 전략적 존재감을 높이는 수단이다.
넷째, 전략적 자율성의 축적이다. 독자 ISR(정보·감시·정찰) 능력, 우주 감시체계, 미사일 방어 다층화 등 선택지를 넓히는 투자가 필요하다. 동맹 기반 위에서 자율성을 키워야만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다.
인도·태평양 질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략 공백은 곧 구조적 열세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미국이 통합 전략을 복원하지 못하면, 중국은 시간을 무기로 삼아 질서를 재편할 것이다. 한국은 그 과정의 수동적 피해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능동적 설계자가 될 것인가.
지금은 '미국이 남을 것인가'를 묻는 데 머물 시간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스스로의 전략을 설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동맹을 강화하되 의존에 머물지 말 것. 산업·안보·기술을 묶는 국가 패키지 전략을 구축할 것. 인도·태평양 10년의 향배는 바로 이 설계 능력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