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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자주 봅시다” 한마디…은행들이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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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욱 기자

승인 : 2026. 02. 18. 18:21

한상욱 사진
"우리 이제 자주 좀 만납시다."

지난 12일 열린 국내 은행장들과의 간담회 말미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남긴 짧은 한 마디였습니다. 겉으로는 익숙한 마무리 인사였지만, 은행장들에게는 결코 가볍게 흘려 넘기기 어려운 메시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자본시장 부문에 쏠려 있던 금융당국의 시선이 점차 은행권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정책의 무게추는 한동안 은행이 아닌 자본시장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가조작 근절과 상법 개정, 국민성장펀드 조성까지 '코스피 5000 시대' 개막을 위한 정책들이 이어지며 자본시장 체질 개선에 주력했기 때문이죠. 반면 은행권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심은 과도한 가계대출과 이자장사, CEO를 견제하지 못하는 이사회의 독립성 부족 등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시장 정책이 궤도에 오르고 '코스피 5000' 시대가 현실화되면서, 금융당국의 무게추가 다시 은행권으로 향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이번 간담회가 열린 시점과 논의된 의제가 눈길을 끕니다. 지난달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선진화 TF'를 출범해 은행지주들을 대상으로 지배구조 체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간담회인 데다, 이날 이찬진 원장 역시 은행장들을 향해 "은행이 먼저 지배구조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기 때문입니다.

최근 지배구조 문제뿐 아니라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과징금 논의, 가계대출 급등,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잇따른 금융사고 등이 겹치면서 금융당국이 더 이상 은행권에 대한 관리·감독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날 이 원장의 발언들 역시 은행권을 향한 평범한 당부처럼 들렸을지 몰라도, 발언이 나온 맥락과 시점을 감안하면 '이제는 은행이 직접 해결책을 마련해 실행해야 할 때'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입니다.

앞으로 추가로 날아올 '청구서'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은행권은 현재 정부의 생산·포용적 금융 추진에 따른 막대한 자금 부담을 떠안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이번 간담회에서는 지난번 간담회에서 다뤘던 금융소비자 보호와 가계대출 관리에 더해, 지배구조 혁신까지 주문이 추가됐죠. 여전히 정치권에서 호실적을 내고 있는 은행권을 향해 '이자장사'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명분으로 더 많은 요구를 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만남이 잦아지는 것이 결코 부정적인 신호만은 아닙니다. 업권은 당국의 의도를 보다 빠르게 확인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당국 역시 현장의 고충을 한층 면밀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장의 발언 역시 은행권이 느끼는 중압감과는 별개로, 당국과 은행권 간 소통을 확대해 향후 금융정책의 보폭을 맞추자는 덕담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은행들의 목소리에 금융당국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은행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혈맥으로,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처럼 성장시켜야 하는 핵심 산업이기도 합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들에게 많은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은행 등과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자주 좀 만나자"는 이찬진 원장의 한마디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은행권의 상황을 이해하고 무리하게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 당국의 배려가 전제돼야 할 것입니다.
한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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