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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조선·해운의 굴곡진 역사와 새로운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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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26. 18:05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한국해법(海法)학회 회장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는 쇠퇴한 미국 조선업을 재건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말한다. 이 프로젝트에 한국 조선업계가 '핵심 엔진'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 하고, 한국 조선업의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평가다. 세계 최강 한국 조선의 기술력이 가져온 쾌거다.

우리 조선과 해운 산업은 단순히 배를 만들고 화물을 옮기는 산업을 넘어, '자원 빈국'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며, 수출 강국 코리아의 혈관 역할을 해 온,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간 탄탄대로만 펼쳐졌던 것은 아니다. 조선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고 정주영 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권 지폐 한 장으로 차관 도입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찬란한 성과가 있기까지의 여정에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 착오와 무리한 행정권 행사가 빚어낸 뼈아픈 흑역사도 존재한다.

한진해운의 파산과 시도상선(CIDO Shipping) 사건이 대표적인 흑역사다. 이런 사건들이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이들 사건을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진해운의 파산은 한마디로 금융 논리가 국가 전략 산업의 경쟁력을 집어삼킨 참사였다. 2016년 8월, 당시 세계 7위이자 국내 1위 국적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6개월 후 법원은 파산을 선고했다. 채권단이 한진그룹과 한진해운에 요구한 최소 지원액(7000억원)과 한진그룹이 제시한 자구안의 최대치(4000억원) 사이의 간극인 '3000억원'이 파산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당시 정부와 채권단은 이 3000억원의 추가 지원을 거절했다. 거절의 근거는 '수익성'과 '부채 비율'이라는 엄격한 금융 잣대였다.

그 결과, 수십 년간 쌓아온 글로벌 노선망과 영업망은 공중분해됐고, 한국 해운의 지배력은 단숨에 와해됐다. 이는 해운-조선-기자재로 이어지는 선박 생태계 전반의 붕괴를 초래했고, 항만 물류 생태계에 종사하던 노동자 수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진해운과 협력하던 중소 물류업체, 포워딩 업체들이 미수금을 회수하지 못해 줄지어 파산하거나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한진해운이 보유했던 핵심 노선 점유율은 대부분 머스크(Maersk), MSC 등 글로벌 공룡 선사와 중국의 코스코(COSCO)로 넘어갔다. 국적 선사의 부재로 국내 수출 기업들은 운임 협상력을 잃었고, 이는 연간 수조 원대의 물류비 부담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뒤늦게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세우고 공적자금 약 7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현대상선(현 HMM)을 육성해야만 했다. 3000억원짜리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7조원짜리 '가래'로 막은 비효율의 결정체였다.

이 사건은 조선업과 해운업의 유기적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정책적 오판이 낳은 비극이었다. 대우조선해양 같은 대형사에 대해서는 총 12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반복된 구조조정을 허용해 온 정부가, 유독 한진해운에 대해서는 훨씬 즉각적이고 가혹한 방식으로 방치한 것은 상대적 박탈감과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진해운이 금융 논리의 희생양이었다면, 시도상선 사례는 국익보다 '행정 성과'를 앞세운 과잉 조치의 전형이다. 시도상선은 일본에서, 일본 금융권의 자금 지원으로 일으킨 사업이며, 사업의 본거지도 일본과 홍콩이다. 자동차 전용선을 이용해 일본산 자동차는 물론, 현대자동차가 만든 자동차를 차질 없이 실어 날랐다. 그간 국내 주요 조선소에 대규모 선박 발주를 지속해 누적 구매 금액은 약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단일 선주로서는 현대중공업에 100척 이상의 선박을 발주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반대로 한국 정부가 시도상선에 대해 도움을 준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국세청은 시도상선 회장을 '거주자'로 간주해 역외탈세 혐의를 적용, 수천억원대의 세금을 부과하고, 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조세회피지역 활용은 조선·해운업계에서는 보편화된 국제 관행이며, 글로벌 선사들 다수가 조세·규제 차익을 활용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인데, 이와 같은 글로벌 비즈니스의 특수성은 철저히 무시됐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은 조세포탈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국가 기관의 무리한 조사와 기소가 한 기업의 몰락을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을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자아낸다. 탈세와 위법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동일한 기준이 국책·민간, 대형·중소, 국내법인·역외법인에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역차별이라고 할 정도의 압박이 가해졌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처럼 굴곡진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산업의 생리를 무시한 채 금융 논리나 행정 편의주의 또는 정치적 이유로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국부 유출과 산업 약화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감시자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서 역할을 재정의해야 하고, 국회는 기업 살리기에 올인하기에도 부족한 시점이다.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고, 위기가 닥쳤을 때는 산업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유연한 정책으로 산업을 지켜야 한다.

MASGA 프로젝트가 한국 조선의 제2 전성기를 여는 열쇠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전문성 없는 규제와 관치행정과 정치논리가 여전히 우리 산업 도처에 발호하고 있지 않은지 엄중히 돌아봐야 할 때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한국해법(海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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