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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속도로 자란 배우’ 주아연,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빛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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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12. 08. 16:51

조급함 없이 단단해지는 한 배우의 성장 곡선
연기에서 유기견 봉사까지, 진심으로 이어진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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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본인 제공
어린 나이에 시작해 어느새 10년을 넘어선 시간을 카메라와 함께 쌓아왔다. 그러나 그 시간은 배우 주아연에게 단순히 경력의 숫자로 남아 있지 않다. 빠르게 앞서기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쪽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리듬을 믿게 된 사람. 어린 시절에는 남보다 느린 걸음이 답답했고, 비교는 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이제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며 축적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 그러한 단단한 시간이 지금의 주아연을 이끌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주변의 속도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 배우로 성장하고 있었다. 단막극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카메라와 함께 자라온 그는 어느 순간부터 조급함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왜 기회가 빨리 오지 않을까 늘 마음이 급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천천히 온 기회가 오히려 더 많은 걸 배우게 해주더라고요. 지금은 저만의 속도를 지키며 달려가는 게 더 편해요."

남과의 경쟁보다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는 태도, 비교 대신 축적을 선택해온 마음가짐은 자연스레 연기의 깊이로 이어졌다. 현장의 공기와 대본의 무게, 스태프와 배우들의 노력이 한 장면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주아연은 연기의 본질을 조급함 너머에서 배웠다.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연기에 집중하고, 더 성숙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묵묵히 제 속도를 지키며 걸어가고 싶어요."

그에게 연기는 속도를 높여 앞서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향해야 할 방향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남의 경주에 흔들리기보다 자기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길을 정직하게 찾아가는 일. 지금도 그는 자기 호흡을 유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배우의 시간을 쌓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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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아연 SNS 갈무리
사극은 배우 주아연을 설명하는 확실한 키워드다. 최근작인 '꽃선비 열애사'의 홍랑 역부터 '청춘이여 월담하라' '연모' '간택' '군주' 등으로 이어진 사극 필모그래피는 단순한 장르 편중이 아니라 배우의 감각이 가장 선명하게 살아나는 공간이었다.

그는 사극이 주는 정서적 즐거움을 잘 알고 있다. 한복을 입고 세트를 누비며 시대의 호흡에 몸을 맞추는 일이 곧 배우 자신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말투와 호흡을 조절하고, 상전을 마주할 때의 고개 각도와 손끝의 움직임까지 모두 시대에 맞는 언어가 된다. 그런 세밀한 조율의 과정이 연기의 껍질을 한 겹씩 벗겨내며 그를 성장시키고 있다. "특히 사극을 좋아하시는 저희 어머니가 화면 속 저를 보며 기뻐하실 때 가장 뿌듯해요.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요. 현장에서도 좋은 말씀들을 많이 듣다 보니 사극이 저한텐 교복처럼 편해진 것 같아요."

하지만 주아연은 안주하지 않는다. 웹드라마와 청춘극에서 다른 결의 연기를 경험하며 장르의 경계를 넓혀가고 있다. 웹드라마에서는 빠른 호흡과 경쾌한 감정 변화를 요구받고, 청춘극에서는 또래 세대의 감정 언어를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사극은 절제와 품이 중요하지만, 현대극은 자연스러움과 밀착이 중요하잖아요. 어떤 장르든 그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늘 배움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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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아연 SNS 갈무리
특히 그는 그동안 맡아온 캐릭터들을 돌아보며 웃어 보였다. "불쌍한 캐릭터가 저랑 잘 어울린대요. 괴롭힘을 당하거나 끌려가거나 넘어지고. 그런데 그런 사연 있는 인물들을 잘 소화하는 건 배우로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앞으로는 다르게 가보고 싶어요. 강한 역할, 악역, 그리고 액션 장르도요. 아직 보여드릴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요."

뮤직비디오 경험은 그에게 감정의 응축을 가능하게 했다. 대사 없이 표정과 분위기만으로 한 곡의 서사를 끌어가야 하는 작업에서 표정의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3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표정 하나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니까 책임감도 생기고 많이 배웠어요. 다들 저를 여주인공으로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광고에서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가장 어려운 연기라는 것을 배웠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연기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웃는 표정이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데 정말 애를 썼고, 지금은 칭찬을 듣게 되어 뿌듯해요."

OTT 환경은 배우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넷플릭스 작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의 짧은 등장만으로도 많은 지인들에게 연락을 받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원동력을 얻었다. 그는 플랫폼이 달라진 시대에서도 연기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규모나 환경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제가 얼마나 좋은 연기를 하느냐가 중요해요." 한 장면이라도 정확하게 기억되는 배우. 그 자리에서 존재감을 남기는 것이 그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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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본인 제공
그에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 현장이 있다. 단막극 '빨간구두'의 어린 옥순으로 출연했던 날.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대사의 무게를 탐구하고 싶어 작가를 찾아가 캐릭터를 물어보고 연구했다. 교복 위에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찍었던 그 장면은 그의 어린 날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게 해준 선물 같은 순간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그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그때의 마음이 지금도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배우의 삶을 가장 현실적으로 지탱하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주아연은 연기가 감정과 체력을 모두 소진하는 일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촬영이 끝난 다음 날은 푹 쉬고 운동도 하며 자신을 회복시킨다. 촬영 전날에는 약속을 잡지 않고 대본을 다시 읽고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작은 루틴이지만 그 안에서 마음의 균형을 잡는다. 칭찬은 그를 춤추게 하고, 모니터 속 아쉬움은 그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배우가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는 날이 있을까 싶어요. 늘 부족함을 느끼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는 연기를 배우던 시절 선생님에게 들었던 한 문장을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있다. 현장에서 자신보다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것. "배우는 가장 편한 자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감사해야 하죠.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분께 잘하려고 하고, 그런 마음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또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게 해주시는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예의와 성실함이 결국 배우의 길을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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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본인 제공
이처럼 연기로 감정과 체력을 소진한 스스로의 균형을 지키는 그에게, 자신을 치유하고 더 단단하게 지탱하게 하는 또 하나의 활동이 있다. 주아연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유기견 보호소 봉사다. 부모님이 반대해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기 어려웠던 시절, 강아지를 보러 간 곳이 보호소였다. 그것이 봉사의 시작이었다. 특히 화성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된 687마리의 강아지들을 만났던 날, 그는 감정의 충격을 오래 안고 있었다. 간식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아이들. 미용과 관리조차 받지 못한 채 방치된 발톱을 가진 아이들. "제 반려견 짜장이는 간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너무 행복해하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간식이 뭔지도 몰라요. 정말 속상했죠."

다행히 많은 아이들이 좋은 가족을 만났다는 소식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위로의 크기는 봉사가 주는 보상보다 더 컸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그 시간이 기도 같아요.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제 마음속에 있던 나쁜 감정들이 치유되는 느낌이에요. 저를 치유해주는 곳이죠." 화면에서 사람의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이지만, 동물 앞에서는 연기 없이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선다. 그것이 그를 더 단단하게 지탱한다.

주아연의 목표는 단순하다. 오래 기억되는 배우. 좋은 연기를 남기는 배우. 그리고 자신의 속도를 사랑하는 배우. 그는 말한다.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꼭 보답하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이렇게 잘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좋은 연기로 진심을 전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게요."

지금도 그는 천천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다. 재빨리 앞서가는 누군가를 쫓지 않아도 괜찮다. 배우 주아연은 조급하지 않다. 그리고 그 안정된 호흡 속에서 한 사람의 배우가 꾸준히 자라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잔향처럼, 그의 무대는 더 깊어지고 있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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