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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맨틱 에러’→‘천둥구름 비바람’까지…BL 장르의 세계관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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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

승인 : 2025. 11. 28. 13:11

원작 기반·플랫폼 전략·서사 분화가 만든 BL 시장의 체질 변화
라이트 로맨스·팬덤 서사·심리 멜로 등 새로운 구조 구축
천둥
'천둥구름 비바람'/웨이브
BL(Boys Love) 드라마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빠르게 외연을 확장한 장르로 떠올랐다. 한두 작품의 돌풍에 의해 움직이던 시기를 지나 플랫폼이 직접 연간 라인업을 구성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28일 방송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BL 시장은 이제 특정 팬층의 취향 장르에 머물지 않고 로맨스 드라마 전반의 영역을 넓히는 구조적 축으로 성장했다. 작품마다 톤·서사·기획 의도가 명확하게 분화되며, 플랫폼에서는 이를 독립된 편성 카테고리로 다루는 단계에 이르렀다. 올해 공개작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이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됐는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장 최근의 변화는 28일 공개되는 '천둥구름 비바람'이다. 체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장례식이라는 비정형적 상황에서 출발해 서사 전체를 인물 간 감정 불균형에 집중시킨다. 원작이 다뤄온 상처와 질투, 관계의 비틀림은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며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정서적 밀도가 서사의 중심에 놓였다. 연출을 맡은 민채연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 감정선을 단계적으로 쌓는 방식을 보여왔고, 이번 작품 역시 BL 장르 안에서는 보기 드문 묵직한 심리 구조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6일 공개된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는 BL 장르의 대중 접근성을 넓힌 작품이다. 원작 웹툰의 산뜻한 감정선을 충실하게 영상화하고, 오피스·연상연하·단짝 서사 등 익숙한 로맨스 코드를 결합해 시청자가 부담 없이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세 인물의 감정 속도가 다른 멀티 러브라인 구조는 갈등보다 감정 변화에 초점을 둔 기획 의도에 맞춰 자연스럽게 구성됐고, 파스텔 톤 중심의 밝은 색감은 작품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강화했다. 공개 직후 SNS에서 짧은 클립 소비가 빠르게 확산된 것도 이러한 접근성 중심 제작 의도가 시청자 반응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시맨틱에러 최애가 나타났다
최애가 나타났다(왼쪽)·시맨틱에러 포스터/각 사
8월 공개된 '최애가 나타났다!'는 BL이 동시대 대중문화의 실제 생태를 서사 안으로 끌어올릴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원작 웹툰이 지닌 팬덤·아이돌 서사를 기반으로, 국민 아이돌과 그를 덕질하는 교사라는 관계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 로맨틱 코미디 구조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팬덤 용어와 아이돌 산업의 기본 구조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했고, 인물 간 거리감과 긴장감은 BL 특유의 감정선과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일본과 동남아 플랫폼에서 동시 공개된 것은 이 작품이 BL 장르 내에서도 보편적 감정 이입이 가능한 구조적 장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 작품은 서로 다른 톤과 방향성을 지니지만 2025년 BL 드라마 시장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핵심 축을 이룬다. '천둥구름 비바람'이 심리 멜로의 깊이를,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가 라이트 로맨스의 접근성, '최애가 나타났다!'가 팬덤 서사의 현실성을 담당하며 BL 장르 내부의 세분화를 이끌었다. 작품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BL이 더 이상 단일한 감정선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흐름의 출발점에는 2022년 공개된 '시맨틱 에러'가 있다. 웹소설·웹툰 기반 BL의 대중화를 목표로 기획된 이 작품은 서로 대비되는 두 인물의 관계 구조를 정확하게 영상화하며 BL 소비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 OTT 시청 1위는 물론 극장판 제작, 해외 팬덤 확산 등 공식 성과는 BL 영상화의 신뢰도를 공고히 했고 이후 BL 작품이 안정적 편성 카테고리로 자리 잡는 기반이 됐다. '시맨틱 에러' 이후 3년간의 축적이 없었다면 오늘의 BL 시장 구조는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결국 2025년 BL 라인업은 단순히 작품이 늘어난 현상을 넘어선다. 플랫폼과 제작사는 BL을 단발성 콘텐츠가 아니라 독립된 시장 단위로 바라보며 작품의 기획·원작·해외 배급 전략이 서로 맞물리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심리·일상·팬덤 서사가 한 해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은 BL이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지형을 실질적으로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최근 BL은 작품이 고립적으로 등장하는 시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획과 서사가 하나의 구조 속에서 역할을 나누며 움직이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올해의 라인업은 BL이 단기 유행이 아니라 체계적 확장의 국면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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