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야학 현장을 가다] 놓쳤던 학창시절을 되돌리는 밤…성 이냐시오 학교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51120010010811

글자크기

닫기

정아름 기자 | 김기현 대학생 인턴 기자

승인 : 2025. 11. 20. 15:54

야학
지난 12일 서강대학교에서 성 이냐시오 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경청하고 있다./사진 = 김기현 인턴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11월. 고3 수험생은 아니지만 늦은 밤 공부에 열중하는 이들이 있다.
한때 멈췄던 배움의 시간을 다시 움직이기 위해 야학을 찾은 늦깎이 학생들이다.
학창 시절이 다시 재생되는 야학 현장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오늘 사회 쪽지시험 잊지 않으셨죠?" "정말이요?" 수업 시작 전 '대학생 선생님'의 쪽지 시험 안내에 다들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은 지난주 주말에 갔던 소풍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빠르게 시험 범위를 훑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찾은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에 위치한 야학 '성 이냐시오 학교'에서는 야학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은 2시간동안 진행됐다. 학생과 선생님 모두 각자의 하루를 마치고 저녁이 되면 학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7명의 학생이 중등 사회 수업을 듣기 위해 대학 강의실 자리를 채웠다.

수업 시작과 동시에 이뤄진 쪽지시험. 학생들은 문제를 풀기 위해 펜 잡은 손을 바삐 움직였다. "4번!" 정답을 확인할 때는 누구보다 뚜렷한 목소리로 답을 외쳤다. 선생님의 필기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형광펜으로 중요한 내용을 밑줄 그었다. 빼곡하게 필기가 적힌 노트를 뒤적이는 학생도 보였다.

수업이 시작된 지 30분쯤 지나자 한 학생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운영하는 가게를 마치고 온 학생이었다.

"늦게라도 오셔서 다행이에요." 선생님은 오히려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맞이했다. 본업이 있는 야학 학생들의 특성상 지각이 낯선 일은 아니다.

학생들이 보는 교재는 실제 중학교 사회 교과서와 조금 달랐다. 교재 속 개념에 대한 '예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손주', '동네 반장' 등 학생들에게 익숙한 소재들이었다. 성 이냐시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교재를 직접 제작해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김영훈(27) 교사는 "예시 같은 일부 내용은 성인 학습자들에게 맞도록 바꿨을 때 더 이해가 빠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수업 시간 내내 교실은 서로 묻고 답하는 소리와 웃음으로 가득 찼다.

"할머니·할아버지는 어떤 지위에 속하나요?"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연달아 질문을 던졌고, 선생님의 질문에도 적극적으로 답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몇몇 학생들은 선생님을 붙잡았다. 아직 풀지 못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학생 중에서는 유방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살기 위해 나왔다는 김미영 (가명·48) 씨가 있었다. 김 씨는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며, "대학생인 둘째와 같이 공부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여전히 학교에 나오는 학생도 있다.

수업시간 동안 곳곳에서 '감사하다'는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젊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놓칠 뻔한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은화(24) 성 이냐시오 학교 교사는 "정말 고맙다고 우시는 학생도 있다.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한 학생의 말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모두가 학교를 나오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됐기에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남은 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야학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성 이냐시오 학교 교무실과 교실의 불은 한동안 꺼지지 않았다. 야학은 늦깎이 학생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학창 시절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김 교사는 "어떤 학생은 작은 인원 안에서도 선생님들에 대한 호불호가 있고, 친구랑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는 게 정말 학교에 다닌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아름 기자
김기현 대학생 인턴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