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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엽의 법과 경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로 본 트럼프 대외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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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18. 17:40

지인엽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14일 한미 양국의 관세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 자료)'가 발표되었다. 발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팩트시트는 관세, 핵잠수함 건조, 대미 투자액 제한 등 다양한 현안을 포괄하고 있다.

외환시장 안정성도 하나의 항목으로 포함되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외환 안정성이 별도 항목으로 다뤄진 만큼 미국이 우리 외환 안정성에 대해 명시적으로 인식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통화스와프 등 구체적 수단이 언급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은 한국이 매년 최대 2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금을 '시장 매입 이외'의 수단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 매입 이외'라는 문구는 한국이 미국에 투자할 달러를 마련할 때 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사들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항목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이번 팩트시트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경제정책이라는 큰 틀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경제정책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거쳐 현재 연방준비제도 이사로 있는 스티븐 미란 박사의 '미란 보고서'에 기반한다. 이 보고서의 주장 중 하나는 미국의 수출 경쟁력 회복이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수단은 관세 정책이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여 가격을 올려 수입을 축소하겠다는 전략이다.

두 번째 수단은 달러 약세 유도이다. 예컨대 환율이 1달러=1400원에서 1달러=1000원으로 하락하면, 한국 소비자는 기존에 1400원을 주고 사던 미국 상품을 1000원에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미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미국의 수출 여건을 개선하는 효과를 낸다. 문제는 미 달러가 국제 결제의 표준 통화이고, 각국이 금융위기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해 달러를 대량 비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달러 수요 때문에, 미국이 의도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것은 관세 정책에 비해 훨씬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다.

보통 경제정책은 시장 조치와 법적 조치를 통해 추진된다. 시장 조치는 규범이나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장 참여자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비공식적·실무적 조치로 단기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구두 개입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가 너무 강하다'라고 반복적으로 발언하자 실제로 시장 환율이 반응하기도 했다.

법적 조치는 행정부와 의회의 권한으로 집행되기 때문에 효과가 명시적이고 지속적이다. 예컨대 수입 관세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에 따라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시행되었다. 이 조치의 적법성은 현재 미 연방대법원에서 심리 중이지만, 관세 부과는 이미 세계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달러 약세를 위한 법적 조치의 주요 근거는 '1988 포괄통상법'과 '무역촉진 및 무역집행법'이다. 이 법령에 따라 미 재무부는 각국의 외환정책을 평가하며, 필요할 경우 특정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제재할 수 있다.

반면 이번 팩트시트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설명 자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 문서에서 대미 투자금 조달을 명분으로 한 달러 수요 확대를 억제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미국이 달러 약세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내법과 같은 경성 규범은 물론, 국가 간 양해각서나 팩트시트와 같은 연성 규범까지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이번 팩트시트를 통해 미국 경제정책의 방향성의 중요함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로, 파운드, 위안, 싱가포르 달러, 태국 바트 등의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연초 대비 약 10% 하락해 약달러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일본·베트남과 같은 대미 무역흑자국의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오히려 상승했다. 이 국가들은 달러 의존도가 높다 보니 단기적으로 미국의 전략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강달러 현상은 약달러 정책이 모든 국가에 즉각적으로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지 못함을 보여준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경제정책은 패권 통화 지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달러 약세를 추구하는 내재적 모순을 지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높이려는 시도로, 미국 경제 전반에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비용이 누적되면, 결국 미국은 자유무역 및 자유금융 질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자유무역 질서 이탈 경로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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