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임금 모두 남성 기준
女 노동정책 전담부서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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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지난 24일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몸은 안전의 기준 밖에 있다"며 "성평등 없는 산업안전은 반쪽짜리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산업안전보건 규정과 사업장 설비 기준이 대체로 '평균 남성 신체'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작업대 높이, 보호구 규격은 물론 인체공학적 설계 기준에도 성별 차이가 거의 반영되지 않아 여성노동자는 허리를 굽히거나 팔을 들어 올리는 불안정한 자세로 장시간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안전 기준이 남성 체형에 맞춰져 있다 보니, 여성은 매일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일하고 그 부담이 몸에 쌓인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사무직 여성노동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배 대표는 "사무실의 의자와 책상 높이도 남성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 여성은 발이 닿지 않아 따로 발받침을 놓거나 어깨를 들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본적인 사무환경조차 인체공학적 설계에서 여성의 신체가 고려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돌봄과 요양처럼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직종은 제도적 공백에 놓여 있다. '근골격계부담작업의 범위 및 유해요인조사 방법에 관한 고시(고용노동부 고시)'는 남성은 25㎏, 여성은 15㎏을 초과하는 중량물을 다룰 경우 2인1조로 작업하거나 보조기구를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주로 공장이나 물류창고처럼 '물체'를 다루는 산업현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배 대표는 "보육교사나 요양보호사가 사람을 반복적으로 안거나 부축하는 행위는 여전히 해당 규정 밖에 있다"며 "사람을 안는 일은 정해진 무게나 형태가 없기 때문에 위험은 더 큰데, 법적 기준에선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인지 관점을 반영한 인체공학적 설계와 강제력 있는 관리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여성노동의 저임금 구조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여성 취업자는 약 1100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0%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약 130만명은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며, 보육·요양·간병·돌봄 등 사회 필수노동을 담당하지만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배 대표는 "이런 일들의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남녀 임금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을 이야기하지만, 여성노동자의 절반은 애초에 그 체계 밖에 있다"며 "시간제·단시간·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성과급도, 호봉제도 없다.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개혁이 아니라 외곽 정리에 그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고용평등 공시제도'가 그나마 변화를 이끌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정부는 기업이 성별 임금격차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고용평등임금공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배 대표는 "기업이 성별 임금격차나 여성 관리자 비율을 공시하는 것만으로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긴 어렵다"면서도 "이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과정이 불평등의 구조를 드러내고 개선을 촉구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시 결과를 인센티브·감점 등 평가체계에 연계해야 실효성이 생긴다"며 "단순 공개를 넘어 변화를 유도할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제도 개선이 지속되려면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할 정부 내부의 성평등 라인이 유지돼야 한다는 게 배 대표의 지적이다. 배 대표는 최근 정부 조직개편으로 노동부 내 '여성고용정책과'가 폐지되고 관련 업무 일부가 성평등가족부로 이관된 점을 우려했다. 그는 "성평등가족부가 신설돼도 노동부의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며 "여성노동정책은 임금·노동시간·고용형태 등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는 만큼, 이를 전담할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