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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존중이 사라진 사회, 퇴계에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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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0. 1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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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호 칼럼니스트·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선생은 참 복 많은 분이시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대학자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 가히 세계적으로 학덕(學德)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를 거듭할수록 나라 안팎에서 다종다양한 연구 및 저술 활동, 학술대회 등 존모(尊慕)의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뜨거워지고 있음에랴.

이는 비단 학문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본받을 점이 많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 중기 꼬장꼬장한 유교사회에서 빼어난 학문적 성취와 함께 흠잡을 데 없는 언행과 원만한 인격으로 주위를 밝힌 특별한 존재였던 까닭이다. 그러기에 퇴계의 정신과 삶은 오늘에도 되새기고 거울로 삼아야 할 값진 유산이다.

혹자는 어떤 측면에서 유교(儒敎)의 조종(祖宗)인 공자(孔子),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보다 복이 많은 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공자와 주자가 공산당 치하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 세력 등에 의해 엄청난 박해와 시련을 당한 사실 때문이다. 특히 공자의 77대 종손(宗孫)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 장개석(蔣介石)이 모택동(毛澤東)의 공산당에 패하자 사당(孔廟)과 종택(孔府), 묘소(孔林)가 있는 산동성 곡부(曲阜)를 떠나 장개석과 함께 대만으로 몸을 피해야 했으니….

퇴계 선생에게 2025년은 더욱 의미 있는 해가 아닐까. 지난달 19~20일 이틀간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도산서원(陶山書院) 창건 45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고, 오는 25일 퇴계 종택(宗宅)에서 17대 종손 이치억(李致億·50) 공주대 교수(윤리교육)가 새 종손이 되었음을 고유(告由)하는 길사(吉祀)가 거행된다. 퇴계 선생은 자신의 학문을 잇는 반듯한 자손까지 두셨으니 이보다 더한 복이 더 있을까 싶다.

그러나 다른 한편, 퇴계 선생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 특히 정치판을 굽어보신다면 아연실색(啞然失色)하실 게 틀림없을 것이다. 지난 13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초유의 대법원장 질의를 놓고 벌어진 범여권 의원들의 '사법수장 조리돌림' 사태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닐 수 없다. 야당이 대법원장을 감금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은 약 90분간 자리를 비우지 못한 채 고성과 인신공격성 막말이 오가는 상황을 견뎌야 했다. 사법부 수장을 향한 정쟁성 '모욕주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출된 권력을 방패로 삼아 헌법적 권력에 의해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사법부를 유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한마디로 상대에 대한 존중(尊重)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의 단적인 사례다. 생전 사람을 귀하게 여긴 퇴계 선생의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선생은 인권을 존중하여 노비를 대할 때도 존댓말을 했을 정도로 신분이나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예로서 대했다. 모든 사람을 중히 여기며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것을 중시한 것.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했던 퇴계의 겸허함이야말로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자세가 아닐는지.

고소·고발은 물론 막말과 혐오가 당성(黨性)의 잣대로 여겨지는 극단의 정치판을 볼 때마다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많은 지금이지만, 오히려 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커져가고 있기에 퇴계 선생의 정신과 삶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퇴계는 '어찌 자신만 옳다고 할 수 있겠나'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겸손을 실천했다. 자신보다 26세나 어리고, 직위도 한참 낮은 신진 유학자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과 8년 동안 120여 통의 편지를 교환하며 '사칠논변(四七論辯, 사단칠정에 관한 논쟁)'을 전개했는데,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그를 '고마운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항상 진지하게 대했다.

퇴계는 고봉이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주장을 재검토하고 고봉의 반박을 수용한다. 퇴계는 이렇게 자신의 대유학자로서의 위명(威名)만 믿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아무리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의견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경청했다.

퇴계의 일생은 늘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돌아보고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지행병진(知行竝進),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따르게 하는 솔선수범(率先垂範)의 삶이었다. 제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하녀의 자식까지 배려하며 살았다는 퇴계. 이런 퇴계의 마음가짐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신적 가치라는 생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은 발전하고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정신문화는 빈곤해졌다. 언제나 자신을 낮춰 상대를 존중하고, 겸허함과 배려를 보여준 퇴계의 선비정신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이론에 대해서도 귀담아듣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예의를 다해 대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항상 어질고 의롭고 바르게 살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그런 자세야말로 전형적인 '섬김의 리더십'의 모습이다.

퇴계 선생은 일찍이 16세기에 봉사자 리더십, 사람 중심 리더십을 몸소 실천한 선각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정치인들이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퇴계의 정신과 삶을 배우는 값진 시간을 가져보기를 간곡하게 권한다.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증오의 정치가 아니라 상식과 품격이 살아 있는 정치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류석호 칼럼니스트·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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