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0원 오르면 자본비율 0.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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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5개월 만에 1420원대를 넘어서면서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이달 들어 미·중 무역갈등이 재점화되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가 상승한 탓이다. 환율이 이달 안에 1440원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지난해 4분기와 같은 환율 급등 국면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융그룹들도 환율 변동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율 상승이 주주환원의 척도가 되는 CET1(보통주자본비율)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그룹들은 환율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이미 수립한 환율 변동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하겠단 방침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1425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4원 올랐다. 지난 4월 29일(1437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장중에는 한때 1430원을 넘기도 했지만,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서며 다시 1430원대 아래로 하락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추석 연휴 기간 중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격화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지는 한, 환율 상단이 이달 1445원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잠잠했던 환율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각 금융그룹에도 비상이 걸렸다. 환율이 오르면 금융그룹이 보유 중인 외화 자산의 환산 가치가 커지면서 그만큼 위험가중자산(RWA)이 증가하게 되고, CET1 하락으로 이어진다.
금융권에선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CET1은 0.01~0.03%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작년 4분기에도 환율 급등 여파로 금융그룹의 CET1이 하락한 바 있다. 당시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돌파하자, 주요 금융그룹의 CET1 평균은 13.07%로 전 분기 대비 0.26%포인트 낮아졌다. 특히 KB금융(-0.31%포인트), 신한금융(-0.11%포인트) 등은 낙폭이 컸다.
올해 들어 이들 금융그룹의 CET1은 상승세다. 4대 금융그룹의 상반기 말 평균 CET1은 13.38%로, 작년 말보다 0.39%포인트 올랐다. 증권가에선 3분기에도 0.05~0.1%포인트가량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환율 상승이 연말에 CET1을 끌어내릴 경우, 내년 주주환원 규모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평가다.
문제는 자본비율 관리가 예년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외환 자산 규모가 큰 하나·우리금융은 작년 4분기에 위험가중치가 큰 기업대출을 줄이면서 적극적인 자산 리밸런싱으로 환율 급등을 방어한 바 있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강화 기조와 가계대출 규제로 각 금융그룹이 기업금융 취급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위험가중자산 관리 부담도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그룹들은 환율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앞서 상반기에 수립했던 환율 변동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그룹 관계자는 "상반기 고환율 상황을 반영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한 만큼, 1420원대 환율은 관리 가능한 범주로 보고 있다"면서도 "다만 환율이 더욱 상승해 1500원 수준까지 근접하게 된다면 내년 주주환원에 미칠 영향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