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혜원기자의 문화路] 강렬하면서 때론 무심한 이강소의 붓질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106010002074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11. 07. 13:44

한국 현대미술 거장 이강소(81) 대규모 전시, 국립현대미술관서 개막
70년대 실험미술부터 오늘날까지 조명...막걸리 팔던 선술집도 재현돼
이강소 전혜원 기자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강소의 대규모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 개막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이강소 작가. /사진=전혜원 기자
이강소(81)는 한국 현대미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다. 실험미술 작업을 하던 19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설치,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판화,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이강소의 붓질은 매력이 넘친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서양화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지만 동양화를 그릴 때 사용되는 서예 붓을 통해 일필휘지를 날린다. 작가는 자신을 비우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붓질을 이어간다. 강렬한 붓놀림은 작가의 오랜 내면 수련과 정신적 성찰을 반영하고 있다.

이강소 전시 전경 전혜원 기자
이강소 개인전 '풍래수면시'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도 그의 강렬하고 힘찬, 때론 모든 것을 비워낸 듯 무심한, 다양한 결의 붓질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강소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대규모 전시를 지난달 31일 개막했다.

이강소는 무엇을 만들거나 그리든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기억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바탕에 두고 인식과 지각에 관한 실험을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 제목은 이러한 작가의 예술세계를 함축한 '풍래수면시(風來水面時)'다. '바람이 물을 스칠 때'라는 뜻으로 새로운 세계와 마주침으로써 깨달음을 얻은 의식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송나라 성리학자 소옹의 시 '청야음(淸夜吟)'에서 따왔다.
오리의 형상이 작품에 자주 등장해 '오리 작가'로도 잘 알려진 이강소는 개막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오리가 살아 움직인 흔적이지만 바라보는 이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오리가 될 수도, 병아리나 닭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강소 섬에서 전혜원 기자
이강소의 '섬에서 - 03037' 전시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전시장에는 MZ세대들이 특히 좋아한다는 작품도 걸렸다. 이강소가 2003년에 그린 '섬에서 - 03037'이라는 제목의 대작이다. 세로 2m, 가로 3.6m에 달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몇 개의 선으로 이뤄져 보는 이에 따라 다소 무성의한(?) 작품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제목이 '섬에서'인데 어디가 섬인지 알 수 없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린 선, 이렇게 대충 그린 것처럼 그리고 끝낸 작가의 패기가 부럽다고, MZ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강소 사슴 전혜원 기자
이강소의 '무제-91193'. /사진=전혜원 기자
사슴을 주제로 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과천의 동물원을 자주 찾으며 사슴과 오리 등을 관찰한 경험은 이강소의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작가가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 온 사슴 작품 역시 세부적인 묘사는 생략된 채 강렬한 선들로 중첩돼 표현됐다. 때문에 사슴의 형태가 고정되지 않고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 학예연구사는 "사슴의 눈이 보이진 않지만 작품을 멀리서 봤을 때 굉장히 강렬하다"면서 "여러 사진들이 한꺼번에 합쳐진 그림으로 레이어가 굉장히 두터운데 이는 다른 시공간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강소 꿩 대나무 전시 전경 전헤원 기자
이강소의 '대나무'(왼쪽)와 '꿩' 전시 전경. /사진=전헤원 기자
죽음으로 귀결되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담은 초기작들도 전시됐다. 정물화용 꿩의 박제에 발자국을 찍은 작업인 1972년작 '꿩', 시멘트로 고정한 대나무의 뿌리를 페인트로 칠한 '대나무' 등은 실존에 관한 작가의 젊은 날 고민을 보여준다.

서울관의 서울박스에는 관객들이 자유롭게 앉아 쉴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마련돼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열렸던 작가의 첫 개인전 '소멸'을 재현한 것이다. 당시 이강소는 전시장에 그림을 거는 대신 실제 선물집에서 가져온 낡은 탁자와 의자를 가져다놓고 막걸리를 팔았다.

여든을 넘긴 나이지만 오스트리아 기반의 세계적 갤러리인 타데우스 로팍과 지난 9월 전속 계약을 맺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강소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로서 남은 시간을 국제적으로 교류하며 열심히 작업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내년 4월 13일까지.

이강소2 전혜원 기자
이강소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울박스에 재현된 선술집의 의자에 앉아 있다. /사진=전혜원 기자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