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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이제는 살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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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연 기자

승인 : 2024. 08. 29. 06:00

더 늦기 전 교제폭력처벌법 마련돼야
여성의당, 교제폭력 가중처벌 촉구
인천 스토킹 살인 2심 선고일인 지난달 17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여성의당과 유가족이 교제폭력범죄 법정형 상향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사회1부 김채연 증명사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출근하려는 길이었다. 오전 6시께 현관문을 나선 A씨는 비상계단에 숨어 있던 전 남자친구 B씨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죽기 전 A씨는 B씨와 헤어진 뒤에도 데이트 폭력과 지속적인 스토킹에 시달렸고 경찰 신고를 반복했다. 법원에서 접근금지명령이 내려졌지만 앙심을 품은 B씨를 막지는 못했다.

지난 7월 17일 A씨가 세상을 떠난 지 딱 1년째 되는 날, B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무거운 형이었지만 A씨의 사촌 언니는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 재판이 끝나면서 가장 허무한 것은 열심히 싸웠지만 동생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만족스러운 형량이란 있을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간절한 부탁을 했다. "교제폭력처벌법 법안이 논의됐다가 폐지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얼마나 무수히 많은 아까운 목숨들이 사라져갔는지 생각해달라"고. "올해 안에 법안이 통과됐으면 한다"고.

인천, 거제, 화성, 강남. 이번 달까지 올해 최소 13명의 여성이 교제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연인이었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49명이다. 미수에 그쳐 생존한 여성도 158명에 달했다. 대부분은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했다는 게 이유였다.

교제 폭력은 범죄 특성상 그 피해 범위가 매우 넓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만큼 가족, 직장, 인간관계 등 사소한 정보까지 모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쉽고 깊게 접근할 수 있어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도 더 잔혹하다.
그러나 현재 교제폭력은 별도로 규정한 법이 없어 형법의 폭행·협박죄가 적용되고 이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교제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은 심리적 부담이나 보복범죄의 두려움으로 전 연인에 대한 처벌 의사를 밝히기도 쉽지 않다. 실제 올해 들어 4월까지 약 26000건의 교제 폭력 신고가 접수됐으나 이 중 구속된 사람은 82명, 약 1.87%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다 풀려난다.

이런 교제폭력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19대 국회 이후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 '가·피해자를 즉각 분리하는 적극적 보호조치' 등을 담은 가정폭력법 개정안과 교제폭력법 제정 법안이 9건이나 발의됐지만 '교제 관계'의 범위 규정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모두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 교제폭력처벌법을 통과시켰더라면 지금 내 딸은 제 옆에 있지 않았을까요?" 경남 거제 교제폭력 피해자 이효정씨의 어머니의 간청은 또다시 22대 국회를 향한다. 교제폭력 처벌법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격분한 가해자들을 완벽하게 막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목숨을 잃기 전 폭력 단계에서, 스토킹 단계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끈질기게 개입하면 살릴 수 있다. 이제는 살려야 할 때다.
김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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