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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1호기부터 새울 원전까지’…대한민국 원자력 40년 역사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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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기자

승인 : 2023. 07. 1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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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생태계 복원②] 외국 의존기 초창기부터 기술독립기까지
차세대 신형경수로 'APR1400' 통해 한층 강화된 독자적 원전 기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원전 운영…시공능력 및 건설 단가 우위
신한울1호기 전경사진
신한울1호기 전경사진./한국수력원자력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기 총 공사비는 3억달러로 1970년 1년 국가 예산 4분의 1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숱한 논란을 거치며 예정일을 훌쩍 넘겨 14년 만에 준공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고리 1호기는 산업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22년 기준 연평균 원자력발전단가는 시간당 42원. 석탄화력발전 약 170원과 비교하면 4배 넘게 저렴해 경제적 효과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일부 원자력발전소 운전이 중지 되고 건설 중인 현장을 멈춰 세웠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원자력 생태계 복원'으로 건설과 운영 모두 날개를 달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최근 수출 실적도 보이면서 '원자력 생태계 복원'이 외화를 버는 수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투데이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산업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우리나라 원전건설사는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초창기에서 지난 40여 년간 꾸준히 발전해 차세대 신형경수로 APR1400 독자 기술을 확보하는 등 기술 자립 단계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원자력 역사는 1955년 8월 8일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원자력평화회의에 3명의 과학자가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1956년 2월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체결 △1957년 IAEA 회원국 가입 △1956년 3월 9일 대통령령에 의한 원자력과 신설 △1958년 3월 원자력법 공포 △1959년 1월 원자력원 정식 발족 등의 단계를 거치며 원자력의 이용·개발에 필요한 기본적 체제를 갖추었다.

◇ 국내 1호 원전 '고리1호기'와 함께 도약한 국내 원자력계

1970년대 세계 석유파동으로 원자력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한국전력공사는 1971년 3월 19일 국내 첫 원전인 고리1호기를 포함한 신규원전 5기에 대한 건설허가를 취득했다. 이후 1978년 4월 고리1호기가 가동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원전 보유국이 됐다.

국내 기술과 경험, 산업기반이 취약했던 초창기, 원전건설은 전적으로 외국의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고리1호기는 가압경수로형 587㎿였는데 당시 주계약자인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가 전반적인 건설책임을 지고 원자로 계통설비의 공급과 초기 원전연료 공급을, 영국의 GEC사가 터빈·발전기 계통설비의 공급과 토건공사의 감독을 맡았다. 이는 우리나라 사상 최대 규모의 단위사업이었다.

웨스팅하우스사가 '일괄발주방식'(Turn-key, 설계시공 일괄)으로 건설한 만큼 기술 축적 측면에서의 큰 진전은 없었으나 △부지조성공사 △일부 토건자재 공급 △단순 노무인력 제공 등을 통해 사업관리와 시운전에 대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 분할발주방식으로 '단계적' 기술 축적…안정성 향상 및 설비용량 확대

고리1·2호기와 월성1호기 등 3개 호기의 원전건설에서 자신감을 얻은 한국전력공사는 사업 추진 방식을 일괄발주방식에서 분할발주방식(Non-Turnkey)으로 변경해 건설기술 자립에 박차를 가했다. 고리3·4호기부터는 한국전력공사 주도 아래 설비용량도 950㎿급으로 늘렸다. 원전건설의 국산화율 제고와 당시 경제 규모 확대에 따른 전력수요 성장을 감안한 조치다.

한빛1·2호기 역시 고리3·4호기와 마찬가지로 한국전력공사 주도로 진행 중이던 1979년 3월 28일 미국의 쓰리마일 원전 2호기 사고가 발생해 인허가 요건이 강화됨에 따라 한빛1·2호기는 안전성 향상에 역점을 두고 설계됐다.

경북 울진군에 건설된 한울1·2호기는 프랑스의 설비를 도입했다. 고리3·4호기와 한빛1·2호기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전력공사의 사업주도방식으로 추진된 해당 발전소도 설비용량 950MW의 가압경수로형이다.

특히 한울1·2호기는 국내업체가 설계, 기기제작, 시공 등 공사 전반에 직접 참여했는데 설계 분야는 6%, 기기공급 분야에서 40%까지 국산화율을 높였고 시공 분야에서는 완전한 기술자립을 이룩했다.

이후 건설된 한빛3·4호기는 순수 국내 기술진에 의해 건설된 한국 원전건설 기술의 집합체이며 한국표준형원전인 한울3·4호기의 효시다. 당시의 표준설계는 후속기에도 계속 적용해 원전건설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명실상부 원전기술자립을 이룩하는 토대가 됐다.

이어 한빛5·6호기는 건설기간 중에 영광군의 건축허가 취소로 인한 건설 중단 및 온배수문제 등 난관이 있었지만 각각 2002년 5월 21일, 12월 24일에 상업 운전을 개시했다. 특히 한빛6호기는 국내 최초 첫 주기 무고장 안전운전을 달성하며 우리나라 원전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입증해냈다.

◇'원전기술 국산화'…한국표준형원전 'OPR1000'와 'APR1400'까지

2000년대는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시기였다. 원자력사업의 주체였던 한국전력공사에서 발전부문을 6개사로 나누면서 원자력사업의 주체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바뀌면서다. 꾸준한 원전기술 국산화를 통해 한빛5·6호기 및 한울5·6호기를 연달아 준공하면서 한국표준형원전인 OPR1000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2000년 11월에 원자력발전량 1조kWh, 2008년 5월에 2조kWh를 돌파했다.

또한 신고리1·2호기, 새울1·2호기 및 신월성1·2호기의 6개 호기를 동시에 건설하며 우수한 사업추진 능력을 입증했다. 특히 OPR1000의 설계 노하우를 바탕으로 설비용량을 1400㎿급으로 격상한 차세대 신형경수로인 'APR1400'의 건설로 한층 강화된 독자적인 원전 기술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국내 원전 건설 및 운영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2009년 12월 27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 APR1400 원전 4개 호기를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UAE로부터 수주한 원전은 국제공개경쟁입찰에서 원자력 강국인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낙찰자로 선정돼 더욱 뜻 깊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원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공능력과 건설단가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탁월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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