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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풍미 ‘로큰롤의 여왕’ 티나 터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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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3. 05. 25.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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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 터너, 스위스 자택서 향년 83세로 별세
믹 재커 "영감 주고 관대한 터너, 절대 잊지 못해"
그래미상 8차례...18만명 동원, 최대 유료 관객 솔로 아티스트
1억달러 이상 투어 티켓, 최고 판매 솔로 공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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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티나 터너가 1987년 3월 30일 프랑스 파리의 팔레 옴니스포츠에서 6년 만 새 투어의 첫번째 공연을 하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1970∼80년대를 풍미한 '로큰롤의 여왕' 티나 터너가 별세했다. 항년 83세.

터너의 매니저는 그가 오랜 투병 끝에 스위스 취리히 근처 퀴스나흐트 자택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24일(현지시간) 밝혔다. 터너는 10년 전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터너는 로큰롤 시대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50년대 후반 일리노이주 이스트세인트루이스 고교 재학 중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인 아이크 터너의 밴드 '킹스오브리듬'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터너는 아이크 터너와 듀오 '아이크 앤 티나 터너'로 활동하던 중 롤링스톤스의 1966년 영국 투어와 1969년 미국 투어 오프닝 공연에 초대받아 주목받기 시작했다.

롤링스톤스의 믹 재커는 그의 죽음에 "그녀는 정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연주자이자 가수였고, 그녀는 영감을 주고, 따듯했으며 재미있고 관대했다"며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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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티나 터너(왼쪽)와 믹 재거가 1985년 7월 14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터너 듀오는 1971년 리바이벌 곡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로 그래미상의 R&B 보컬 퍼포먼스 최고상을 받았다. 터너는 남편의 폭력과 학대로 30대에 이혼한 후 1984년 솔로 앨범 '프라이빗 댄서(Private Dancer)'로 팝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는 다음 해인 1985년 '왓츠 러브 갓 투 두 위드 잇(What's Love Got to Do With It)'으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최고 여성 팝 보컬' 등 3개 부문을, '베터 비 굿 투미(Better Be Good to Me)'로 '최고 여성 록 보컬 퍼포먼스'상을 각각 수상했다. 그의 통산 그래미상 수상은 8차례다

이 앨범은 500만장이 판매됐고, 1988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스타디움 공연에서 약 18만명을 동원해 솔로 아티스트로서 최대 유료 관객 기록을 경신했다.

기네스북은 터너가 2000년 '투엔티 포 세븐(Twenty Four Seven)' 투어로 1억달러 이상의 티켓을 판매하자 그를 역사상 가장 많은 콘서트 티켓을 판매한 솔로 공연자라고 발표했다.

그는 1985년 독일 음악계 거물 에르빈 바흐를 만난 뒤 1988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고, 1995년 007 시리즈 영화 '골든 아이'의 주제곡을 녹음했으며, 2008∼2009년 월드 투어 공연을 끝으로 가수 활동을 접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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