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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 9세기경 금동여래입상 2구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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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기자

승인 : 2017. 07. 2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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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가운데 가장 큰 입상 지정문화재 가치 인정
금동여래입상 2구
영덕군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왼쪽)과 호신불금동여래입상/제공=영덕군
경북 영덕군 유금사 3층 석탑(보물 제674호) 보수사업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 중 9세기경의 금동여래입상 2구가 출토됐다.

금동여래불상 2구는 완전한 여래불상으로 높이가 39.5㎝이며 거신광배는 탈락되고 없으나 전체적으로 잔존상태가 온전하다.

23일 군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유금사 경내 북서쪽에 유존하고 있는 3층 석탑이 틈이 벌어지고 한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이를 해체·이전 복원하고자 재)삼한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병곡면 금곡리 838번지에 위치하는 유금사 3층 석탑 이전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지난 5월 22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조사했다.

불상은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시무외인을, 왼손은 내려 여원인을 하고 있다. 통견법의는 안에 속옷을 묶은 매듭이 있고 통견은 전체적으로 ‘U’자상으로 흘러내리는 아육왕식의 주름이 음각 새김선으로 새겨져있다.

그리고 뒷면에 탕구 등의 구멍이 몸 전체에 뚫려 있고 호상과 ‘U’자상의 통견법의의 음각새김 등으로 볼 때 9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이즈음에 제작된 금동여래입상은 경주 안압지 출토 금동여래입상(24.7㎝), 홍천 물걸리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22.6㎝), 의령 보리사 출토 금동여래입상(26㎝) 등 수점에 불과하다. 이 금동여래입상은 9세기 전반 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가운데 가장 큰 입상이다.

발굴조사를 맡은 재)삼한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유물의 크기, 잔존상태, 미학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알려진 여래입상 가운데 가장 우수한 예술작품으로 지정문화재로 가치가 인정된다.

군은 향후 해체 보관중인 3층 석탑은 원 탑지를 확인한 후 그 곳에 이전하고 아울러 초창기 유금사의 사역확인을 통해 당시 절터를 복원해 고대 사원문화의 교육장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안종혁 군 문화재담당은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원 탑지를 찾고 강당과 금당지의 전체모습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경주외역에 건립된 8~9세기 산지가람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주요한 유적이므로 현 조사범위 외역에 대한 정밀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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