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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서 이슬람 4개국 외무장관 회담…미·이란 직접 협상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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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6. 03. 30. 08:08

'수에즈 방식' 통행료…호르무즈 관리 컨소시엄 구성 논의
파키스탄 외무 "수일 내 미·이란 회담 주최"
이란 강경파, '미군 철수' 등 9개 조건 제시
파키스탄, 미 신뢰 회복·지정학적 연결성 기반 중재 역할
PAKISTAN IRAN CONFLICT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무장관(왼쪽 두번째부터 시계 방향)·하칸 피단 튀르키예·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바드르 압델라티 이집트 외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파키스탄 외무부 제공·EPA·연합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을 중재하는 파키스탄은 29일(현지시간) 이슬람 3개국 외무장관을 초청해 4자 회담을 열었다.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이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하칸 피단 튀르키예·바드르 압델라티 이집트·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과 회동한 후 가진 브리핑에서 4개국 외무장관들이 "관련 당사자들 간 체계적 협상을 위한 여건 조성"을 촉구했으며, 외교가 분쟁 종식을 위한 "유일하게 실현 가능한 경로"라는 데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다르 장관은 "이란과 미국 양측이 파키스탄에 회담 주선을 맡겼다"며 "파키스탄은 앞으로 수일 내에 진행 중인 분쟁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양측 간 의미 있는 회담을 주최하고 중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압델라티 장관과 피단 장관은 파이살 장관보다 하루 앞서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해, 파키스탄 정부 실세로 꼽히는 아심 무니르 국방군 총사령관도 만났다. 파이살 장관은 별도로 셰바즈 샤리프 총리, 다르 외무장관, 무함마드 아심 말리크 국가안보보좌관과도 면담했다.

당초 회담은 이틀 일정으로 예정됐으나 파키스탄 측은 회담 당일 3개국 외무장관이 귀국길에 올랐다고 밝혔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회담이 미·이란 회동을 위한 준비 작업과 함께 중재국들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PAKISTAN-ISLAMABAD-FOREIGN MINISTERS-QUADRILATERAL MEETING
하칸 피단 튀르키예(왼쪽부터)·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바드르 압델라티 이집트 외무장관과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회담장으로 들어가고 있다./신화·연합
◇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통행료 구상

소식통들은 회동 초반 논의가 중동전쟁 이후 이란이 사실상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문제에 집중됐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소식통은 회의 전 이집트를 포함한 여러 국가가 '수에즈 운하 방식'의 통행료 체계가 포함된 제안서를 미국 백악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란 의회 구상과 맥락이 닿는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을 인용해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안전을 제공하는 대가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법안의 초안을 다듬고 있으며 다음주에 최종안이 나올 예정이라고 지난 25일 보도한 바 있다. 이 법안이 실제로 통과돼 시행되면 전쟁 비용 보전과 안보 유지 비용 명목으로 이란이 받을 선박 통행료는 회당 약 200만달러(약 3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파키스탄 소식통 2명은 튀르키예·이집트·사우디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원유 수송을 관리할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으며 파키스탄에도 참여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다만 파키스탄은 공식적으로 참여 요청을 받지 않았으며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소식통들은 컨소시엄 관련 제안이 미국·이란과도 논의됐다고 밝혔다.

다르 외무장관은 이란이 20척의 파키스탄 국적 선박에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시프 두라니 전 이란주재 파키스탄 대사는 이번 조치가 "미국이 강압을 포기한다는 조건하에 이란이 세계와의 교역에 열려 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튀르키예 외교 소식통은 "선박의 안전한 통행 보장이 이와 관련해 중요한 신뢰 구축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IRAN-CRISIS/
미군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진 이란 어린이들의 사진이 28일(현지시간) 테헤란의 한 광장에 전시돼 있다./로이터·연합
◇ 이란 강경 매체, 9개항 전제조건 제시

이란의 강경보수 성향 매체가 이날 미국과 종전을 협상하기 위한 9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해 주목된다.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원 출신의 에브라힘 카르하네이 박사는 일간 카이한(Kayhan)에 보도된 기고문에서 "이번 전쟁의 종식은 '12일 전쟁(2025년 6월)' 때와 달리 포괄적이며 억지력이 있는 전제조건에 기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르하네이 박사는 가장 우선적인 조건으로 "미군을 이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시키고, 서아시아(중동)에 있는 미군기지를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주권하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경제 체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란이 국제적인 원유 수송로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할 경우 미군의 위협 없이 통행료를 받겠다는 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울러 카르하네이 박사는 △ 이라크·레바논 및 '저항의 축'에 대한 불가침 원칙 △ 유엔과 미국의 이란 제재(sanctions) 해제 공식 발표 △ 미국 등의 이란 자산 동결 해제와 반환 △ 미국·이스라엘의 '침공' 인정과 배상금 지급 △ 아랍에미리트(UAE)의 3개 섬(아부무사 등) 영유권 주장 종식 성명 △ 전쟁과 테러를 영구히 중단하겠다는 '침략국들'의 약속 등을 협상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다.

이 같은 주장은 미국 측이 건넨 15개항 종전안에 이란이 곧 역제안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나와 주목된다. 이스라엘 일간 예디오트아흐로노트(Yedioth Ahronoth)는 카이한에 실린 9개항 조건을 소개하면서 "이 매체가 이란 지도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미국이 제시한 종전안에는 △ 핵시설 해체 및 우라늄 농축 금지 △ 보유한 농축 우라늄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관 △ 역내 대리세력 지원 금지 △ 호르무즈 해협 통행 보장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국영방송은 정부가 △ 이란 고위 관리에 대한 살해 중단 보장 △ 미래 공격 금지 보증 △ 배상 △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주권 행사 등을 요구하는 5개항 제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Emirates Iran War
화물선들이 27일(현지시간) 아라비아만 너머 아랍에미리트(UAE) 연안의 호르무즈 해협을 향해 항해하는 해안에 어선들이 보인다./AP·연합
◇ 파키스탄, 중재국으로 부상한 배경

파키스탄은 최근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중재국 역할을 자처해 왔다. 무니르 총사령관은 지난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고, 샤리프 총리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1시간 이상의 심도 있는 통화를 포함해 최근 수차례 대화를 나눴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에 따르면 샤리프 총리는 "대화와 긴장 완화를 촉진하기 위해 미국, 우방 걸프 국가 및 이슬람 국가들과 협력하는 파키스탄의 진행 중인 외교적 노력을 페제시키안 대통령에게 설명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2004년부터 미국의 주요 비(非)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이다. 그러나 미군 기지가 없어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이번에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지 않았다. 또한 파키스탄은 시아파 무슬림 비중이 높아 국경을 맞댄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도 오랜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

AP통신은 이란 및 파키스탄과 인접한 오만과 카타르 등 기존 중재국들이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공격을 받으면서 파키스탄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파키스탄의 안보 분석가 시에드 모하마드 알리는 이번 분쟁이 파키스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에너지 안보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동에서 일하는 500만명의 파키스탄 교민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금액은 파키스탄 전체 수출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유가의 여파로 파키스탄은 연료 가격을 약 20% 인상했다.

또한 파키스탄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나토식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했다. 임란 알리 전 주오만 파키스탄 대사는 "파키스탄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서 매우 어려운 외교적 균형을 유지해 왔다"고 평가했다. 후사인 하카니 전 주미 파키스탄 대사는 "중재자 역할은 사우디아라비아 편에서 분쟁에 직접 참전하라는 즉각적인 압박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Iran US Pakistan What to know
파키스탄 육군 원수로 승진한 아심 무니르 총사령관이 2025년 5월 21일(현지시간) 라왈핀디의 육군 본부에서 진행된 특별 예포 행사에서 순교자 기념비에 헌화한 후 기도를 하고 있다./파키스탄 합동군 홍보국 제공·AP·연합
◇ 파키스탄, 트럼프 측근과의 관계로 미국 신뢰 회복

WSJ는 파키스탄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을 공들여 관리함으로써 미국의 신임을 회복했다고 분석했다. 파키스탄은 오사마 빈 라덴을 은닉했다는 이유로 한때 미국 정부로부터 외면받던 나라였으나, 이제 미·이란 협상 테이블로 양측을 이끄는 주요 중재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무니르 총사령관은 스티브 윗코프 미국 중동특사 계열 기업과 파키스탄 정부 간 가상화폐 거래 서명식을 주재했다.

윗코프 특사의 아들 재크 윗코프는 파키스탄 재무부와 달러 연동형 스테이블코인 활용 탐색을 위한 협약에 서명했는데, 이는 같은 회사가 외국 정부와 맺은 첫번째 협약이었다. 아울러 파키스탄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열망해 온 노벨평화상 후보로 그를 추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니르 총사령관을 "좋아하는 파키스탄 원수"라고 공개적으로 칭한 바 있으며, 백악관 대변인은 "파키스탄은 이란과의 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번 행정부 출범 초부터 중요한 파트너가 되어 왔다"고 밝혔다. 말리하 로디 전 주미 파키스탄 대사는 "파키스탄은 트럼프 행정부 2기 초반에 그에게 두 번의 초기 승리를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파키스탄 갈등안보연구소의 압둘라 칸 소장은 AP에 "파키스탄의 중재 노력이 분쟁의 상대적 자제에 기여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카니 전 대사는 "파키스탄의 관점에서 이번은 협상이 타결되든 안 되든 어느 쪽이든 이익"이라며 "파키스탄이 이뤄낸 것은 고립된 이미지를 무대 중앙에 있는 이미지로 교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파키스탄의 중재 전례

파키스탄은 중재국으로 나선 전례가 있다. 야히야 칸 대통령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 중국 방문으로 이어진 비밀 외교 채널 구축을 주선했다. 1988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이끌어낸 스위스 제네바 협정 협상에도 파키스탄이 참여했으며, 2020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탈레반 집권을 가능하게 한 카타르 도하 협정에서도 파키스탄은 미국과 탈레반 간 접촉을 이끌어낸 바 있다.

WSJ는 파키스탄이 미·이란 협상에서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보다는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당시와 같이 비밀 채널 촉진자 역할을 선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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