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일가 '검은돈'에 국민적 관심
法 '불법 비자금' 판단에 환수 요구 거세
공소시효 만료 등 장벽…'독립몰수제'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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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국민의 시선은 '재벌가의 재산싸움'이 아니라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전직 대통령 일가의 '검은 돈'에 쏠린다. 노 관장이 재산분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꺼내든 '노태우 비자금'을 법원이 '불법 자금'으로 판단하면서 국고 환수를 향한 국민적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최고 권력자가 뇌물로 취득한 범죄수익이 단순히 재벌가의 사적재산 싸움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고법 가사1부(이상주 부장판사)는 9일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첫 변론기일을 연다. 준비기일 없이 곧장 변론이 진행되는 만큼 조기에 선고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1조3808억원(공동재산 중 35%)의 재산분할을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2심의 재산분할액 산정의 근거가 된 '노태우 비자금'이 불법 뇌물로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므로 이를 재산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법률심의 한계상 비자금의 실체나 SK 유입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비자금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자료들은 이미 법정에 제출됐다. 노 관장은 항소심에서 어머니 김옥숙 여사의 이른바 '선경 300억' 메모와 약속어음 등을 제시하며 노태우 비자금이 SK그룹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주장을 펼쳤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SK그룹이 1992년 태평양증권을 인수할 당시 전달됐던 노태우 비자금이 SK그룹 성장의 토대가 됐다고 인정했다. 해당 자금은 과거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인정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는 별개로, 당시 추징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비자금을 재산분할 계산에서 아예 배제하라고 판결한 만큼 파기환송심에서 해당 자금의 실체를 다룰 법적 명분은 크지 않다. 결국 노태우 비자금의 실체를 정면으로 따지기 위해선 별도의 형사 재판이 불가피하다.
일단 시민단체들이 비자금 은닉 의혹을 잇따라 고발하면서 검찰은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5·18기념재단과 군사정권범죄수익 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노 관장과 김옥숙씨 등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조세범처벌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에 배당하고 노 관장 일가의 금융자료를 분석하는 등 계좌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근호 환수위 사무국장은 "노 관장 측에서 공소시효가 지났고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무리를 하면서까지 메모를 내놓은 것"이라며 "법원이 공교롭게 이를 인정했고, 이렇게까지 국민적 저항이 셀 거라 예상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법원에서 불법 비자금임을 확실하게 인정한 것이고, 법원 판단이 나왔으니 당연히 환수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일반 국민은 10억, 20억원만 자녀에게 물려줘도 증여세를 내는데, 이 천문학적 금액을 세금 한 푼 없이 증여했다는 점에서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아무리 최고 권력자의 통치 자금이라 하더라도 불법적인 자금이면 환수해야 한다. 국세청과 검찰이 이를 그대로 두면 매우 위험한 선례가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고발인 신분으로 수사 상황을 문의하고 있지만, 검찰로부터는 '수사 중'이라는 답변 외에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형사재판이 진행되더라도 환수에 대한 법적 장벽은 여전히 높다. 환수 조치를 위해선 유죄 확정 판결이 전제돼야 하는데, 직접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과 최종현 SK 선대 회장이 모두 사망한 데다 비자금 전달 시점이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정 전이라 공소시효 만료 등의 문제가 있다.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거나 환수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노태우 비자금은 민사재판에선 불법 자금으로 판단이 배제되고, 형사에서는 확정 판결이 없어 환수가 불가능한 '법적 공백' 상태에 놓였다는 평가다.
국회는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할 방법으로 '독립몰수제'를 논의하고 있다. 독립몰수제는 유죄판결 없이도 범죄수익임이 확인되면 별도 절차를 통해 해당 수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민주당 박균택 의원과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 등이 독립몰수제 도입 근거가 담긴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발의한 상태다. 법무부 역시 독립몰수제 입법을 촉구하고 나섰다. 법무부 관계자는 "신속한 도입을 목표로 국회에서 논의되는 부분에 대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다만 노태우 비자금 관련해선 수사가 진행 중이라 독립몰수제 적용 등의 구체적 사항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