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는 필수다. 특히 반도체처럼 대규모 선행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자본조달 통로를 막는 것은 미래 사업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자회사 상장이 언제나 모든 주주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상장 과정에서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이 희석되거나 모회사 주가가 할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수주주들이 반대하는 것은 자본조달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은 중복상장 자체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기에는 구별해야 할 문제가 있다. 기존 사업부를 물적분할 한 뒤 자회사를 상장하는 것과 이미 보유한 자회사를 상장하는 것은 서로 다른 거래다. 전자는 기존 주주에게 신설회사 주식이 직접 배분되지 않은 채 자회사 상장으로 이어지는 반면, 후자는 기존 자회사를 통한 자본조달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두 거래가 모두 중복상장이라는 이유로 같은 비판에 직면한다. 그 이유를 알려면 기업분할 제도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기업분할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때다. 부실 사업부를 떼어 내거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구조조정을 쉽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기업들은 인적분할을 지배구조 개편의 수단으로 자주 활용했다. 인적분할을 하면 신설회사 주식을 모회사 주주들에게 나눠 주므로 기존 주주도 두 회사의 주주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 이른바 '자사주 마법'이 끼어들었다. 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에도 신설회사 주식을 배정하면서 지배주주가 별도 출자 없이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인적분할 시 자기주식에 대한 신주배정은 2024년 말 금지됐다.
그사이 투자유치와 사업 전문화 등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들은 물적분할로 기울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상장기업의 분할 482건 가운데 물적분할은 377건에 달했다. 물적분할에서는 신설회사 주식을 모회사가 전부 보유하므로 기존 주주에게 신설회사 주식이 직접 주어지지 않는다. 이후 성장성이 높은 사업부를 상장하면 모회사 주주는 그 사업에 간접적으로만 참여하게 된다. 신주발행으로 외부 투자자가 유입되면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율도 낮아진다. 이 과정에서 신설회사의 가치가 모회사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이른바 물적분할 후 상장, 즉 '쪼개기 상장' 논란이다. 또 규제가 뒤따랐다. 2022년 물적분할 반대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고, 2025년에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에게까지 확대했다. 올해는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상장심사 체계도 시행됐다. 인적분할 시 자사주 배정을 규제하고, 물적분할에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의무화하더니 이제는 중복상장 자체를 억제하는 모양새다. 기업의 거래방식이 바뀔 때마다 규제가 따라붙는 사이, 정작 기업과 주주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주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 아닌가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의 본질은 중복상장이라는 형식보다 기업과 주주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할 제도적 수단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예컨대 물적분할 후 상장에서 지배주주는 자금조달과 지배권 유지를 추구하는 반면, 소수주주는 자신이 투자했던 성장사업을 직접 소유하기를 원할 수 있다. 그러나 물적분할만으로는 이러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렵다. 기업분할은 단순히 사업부를 떼어 내는 절차가 아니라 소유권과 지배권을 재배분하는 거래다. 그런데 우리는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이라는 두 가지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상법상 다른 분할 형태도 존재하지만, 주주들의 서로 다른 투자 목적을 반영해 소유권을 유연하게 재배분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에서는 기업을 분할할 때 스핀오프(spin-off)뿐 아니라 스플릿오프(split-off), 에쿼티 카브아웃(equity carve-out)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한다. 특히 스플릿오프에서는 희망하는 주주가 모회사 주식을 자회사 주식과 교환하고, 나머지 주주는 모회사에 남을 수 있다. 기존 사업에 계속 투자하고 싶은 주주는 남고, 분리되는 사업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는 주주는 자회사로 옮겨가는 것이다. 주주마다 다른 투자 목적을 인정하고 소유권을 재배분하는 방식이다. 기업분할에 반대하거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것 외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기는 셈이다.
물론 주식교환만으로 신규 자본이 유입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분할 방식에 자회사 지분매각이나 신주발행을 결합하면 기업의 자본조달 수요와 기존 주주의 선택권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공정한 주식교환비율과 정보공개, 세제 정비도 뒷받침돼야 한다. 소수주주에게 분할에 반대하고 주식을 팔고 나갈 권리만 주는 것과 분할 이후 어느 사업에 투자할지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이해상충으로부터 벗어날 출구를 제공한다면, 후자는 이해상충 자체를 줄이려는 접근이다.
오늘날 중복상장 규제 논란은 상당 부분 물적분할 후 상장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작 솔리다임은 물적분할로 설립된 회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중복상장 논란에 휘말렸다. 물적분할 후 상장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중복상장 일반의 문제로 확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규제해야 할 것은 중복상장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충돌이다. 기업에는 효율적인 구조조정과 자본조달의 길을 열어주고, 주주에게는 투자대상을 선택할 권리를 넓혀줘야 한다. 중복상장 규제를 강화하기에 앞서 기업분할 제도부터 다시 살펴볼 때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