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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수출하는데 병원은 캄캄…라오스 ‘동남아 배터리’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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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09. 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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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수출 3배 늘렸지만 국내 배전망은 1970년대 그대로
병원 인공호흡기 멈추고, 진료소는 주 2~3회 정전
동남아 최대 풍력단지도 전량 베트남 수출…"현지용은 제로"
LAOS-ENERGY-ELECTRICITY <YONHAP NO-4203> (AFP)
지난달 22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전기 기술자들이 보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수십 개의 댐과 수력발전소를 가동해 인접국에 전기를 공급하며 스스로를 '동남아의 배터리'라 자부해 온 라오스가 정작 자국 내에서는 만성적인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력 생산의 대부분을 외화벌이용 수출로 돌린 채 국내 배전망 투자를 방치하면서, 수도 비엔티안의 병원 인공호흡기마저 멈춰 서는 참극이 빚어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유엔 지정 최빈개도국(LDC)인 내륙국 라오스는 태국·베트남 등 인근 국가로의 전력 수출을 핵심 국가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세계은행(WB) 집계 기준 라오스는 2023년 총 발전량의 약 3분의 2를 해외로 팔아치웠으며, 라오스전력공사(EDL) 전직 전문가는 현재 수출 비중이 발전량의 80% 수준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라오스 공식 통계상 연간 전력 수출량은 2014년 12테라와트시(TWh)에서 2024년 38TWh로 10년 만에 3배 이상 폭증했고, 2023년 한 해 전력 수출액만 26억5000만 달러(약 3조50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쏟아져 나오는 전기는 정작 자국민의 삶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그랜트 하우버 아시아 수석자문역은 "대부분의 대형 발전 프로젝트에서 연결된 송전선은 해외 고객 전용 고속도로와 같다"며 "국내 배전망과는 아예 연결조차 돼 있지 않다"고 짚었다. 라오스 내 배전망의 상당수는 1970년대에 구축된 채 방치돼 있어, 급증한 도시화와 상업·냉방 수요를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비엔티안에서는 단독주택 1가구용으로 설계된 전력선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통째로 물리면서 노후 변압기 과부하 화재가 빈발하는 실정이다.

에너지 인프라 붕괴의 대가는 고스란히 시민과 의료 현장으로 전가되고 있다. 비엔티안의 한 주요 국립병원 소아과 응급실 의사는 "최근 몇 달간 전력 공급 불안정이 극심해졌고 소아센터 피해가 컸다"며 "인공호흡기가 갑자기 멈추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병원 비상 발전기로 가까스로 대처했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병원 인근 골목의 노후 전선에서 불이 나며 엑스선과 초음파, 생명유지장치가 일제히 먹통이 되기도 했다. 시내 한 동네 진료소 직원은 "일주일에 2~3회꼴로 정전이 나지만 비상 발전기가 없어 옆 상가에서 임시로 전선을 끌어다 쓴다"고 전했다.

전력 수급 불안은 기후적 한계와 맞물려 더욱 심화된다. 수력 발전 비중이 전체의 80%에 달하는 라오스는 3~8월 건기마다 댐 수위 저하로 발전량이 급감한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라오스는 건기마다 국내 수요와 해외 수출 계약 물량을 동시에 충족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자체 생산한 전력을 수출 계약 탓에 내보내느라, 정작 자국 내 전력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비싼 외화를 들여 역수입하는 기형적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도 라오스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는 멈추지 않고 있다. 최대 수입국인 태국에 이어 인접국 베트남이 수입 물량을 대폭 늘리고 있어서다. 지난해 가동을 시작한 600메가와트(MW) 규모의 동남아 최대 육상 풍력발전소 '몬순 윈드' 프로젝트 역시 생산 전력 100%가 국경을 넘어 베트남으로 직행한다. EDL 전직 기술 전문가는 "현지 공급 물량은 사실상 '제로'"라고 잘라 말했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의 라오스 전력 수입 확대 뒤에 경제적 요인을 넘어선 지정학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싱가포르 ISEAS-유솝이삭연구소의 레 홍 히엡 선임연구원은 "베트남의 수입 확대는 자체 제조업 전력난 해소 목적도 있지만, 대규모 인프라 차관을 앞세워 라오스를 잠식해 온 중국에 맞서 비엔티안에 대한 외교적·전략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짙다"고 진단했다. 자국민의 필수 전력망조차 갖추지 못한 빈곤국 라오스가 주변 강국들의 치열한 영향력 경쟁 무대로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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