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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절박함'이었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고민했다. 관람객은 늙어가고, 젊은 세대에게 미술관은 지루한 창고일 뿐이었다. 그들에겐 미술관의 정의를 다시 쓰는 것이 필요했다.
이 거대한 실험을 주도한 것은 당시 미술관장 데이비드 프랭클린과 최고정보책임자(CIO) 제인 알렉산더, 그리고 뉴욕의 디자인회사 '로컬 프로젝트(Local Projects)'의 제이크 바튼이었다. 특히 "관람객이 예술을 더 자세히 보게 만드는 도구는 기술"이라는 제이크 바튼의 철학은 확고했다. 그들은 리노베이션 예산 중 상당 부분을 '디지털 신경망'을 구축하는 데 쏟아부었다. 디지털 기술을 방편으로 관람객을 예술의 본질로 유인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아트렌즈 갤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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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비평가들은 "미술관을 오락실로 만들 셈인가"라고 혀를 차면서, '예술의 아우라(Aura)가 디지털 픽셀 따위에 의해 훼손될 것'이라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들은 만질 수 없는 유물을 디지털로 만지고, 확대하고, 자신의 표정과 매칭하며 놀았다.
결과는 숫자가 증명했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급증했고, '아트렌즈 갤러리'를 체험한 관람객들이 실제 전시실로 올라가 진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평균보다 훨씬 길어졌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디지털이 아우라를 죽인다'는 통념이 보기 좋게 깨지고, 오히려 디지털은 예술을 가리키는 가장 강력한 지시봉이 된 것이었다. 전 세계 박물관 관계자들이 클리블랜드로 성지순례를 오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초기 버전인 '갤러리 원'이 기술의 '신기함'에 방점을 찍었다면, '아트렌즈 갤러리'는 '직관'과 '연결'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시선 추적, 동작 인식 기술이 더 정교해졌고, 무엇보다 '도킹(Docking)' 시스템을 통해 관람객의 스마트폰과 전시관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공간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나는 그 미래가 '개인화(Personalization)'와 'AI 큐레이션'에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박물관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송출하는 라디오였다면, 미래의 아트렌즈는 관람객과 대화하는 인공지능이 될 것이다.
핵심은 "작품을 만나는 다양한 방법"을 열어둔다는 데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관람객이 어떤 색감을 좋아하고, 어떤 표정의 초상화 앞에서 오래 머물며, 붓 터치가 거친 그림을 선호하는지 매끄러운 조각을 선호하는지 등을 AI가 학습한 다음, 미술관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를 위한 동선을 제안하고 그를 위해 숨겨진 소장품을 추천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피지털(Phygital: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의 결합)'적인 경험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오래지 않아 단순히 스크린을 터치하는 것을 넘어, 증강현실(AR) 안경을 쓰고 전시실을 걸으면, 텅 빈 고려청자 안에 천 년 전의 술이 채워지고,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의 맥락을 현재로 소환하는, 중요한 체험의 시간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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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기 위해선 뗏목이 필요하지만,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은 버리고 가야 한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위대한 점은 관람객들이 '기술'이라는 뗏목을 타고 즐겁게 노는 사이에 어느덧 '예술'이라는 피안(彼岸)에 도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술을 숭배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도구로 쓸 뿐이다. '아트렌즈 갤러리'의 미래 비전은 결국 '휴머니즘'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무리 AI가 발달하고 가상현실이 정교해져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수백 년 전 예술가가 캔버스에 쏟아부은 고뇌와 환희, 그 인간적인 숨결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그 숨결이 현재의 우리에게 닿도록 돕는 바람일 뿐이다.
만일 박물관이 멈춰 있다면 그건 무덤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면 끊임없이 관람객에게 말을 건다. '지금 우리의 박물관은 어떤 표정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가?'.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혁신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무게감이 느껴진다.
문화유산, 디지털 전환, 그리고 관람객 참여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에게, 클리블랜드 미술관 '아트렌즈 갤러리'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관람객에게 이 정도까지 권한을 넘겨줘도 되는가?", "기술을 이렇게까지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작품의 품격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마뜩잖은 질문조차도 실제 전시공간 안에서 시험해 보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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