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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가짜 뉴스보다 ‘가짜 소비’가 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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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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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김명호 객원논설위원
가짜 뉴스가 논란이 될 때마다 화살은 플랫폼과 매체로 향한다. '알고리즘이 문제다, 자극적인 제목 장사가 문제다, 편향적인 프로그램 진행자나 1인 유튜버가 문제다'라는 식이다. 특정 매체의 정치 성향이 문제라는 진단까지 쏟아진다. 이런 진단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실의 절반만 담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가짜 정보가 그토록 오래, 넓게 퍼지는 이유는 그것을 만들어 파는 쪽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을 기꺼이 사들이는 쪽에 있기 때문이다. 공급이 아무리 많아도 수요가 없으면 시장은 성립되지 못한다. 조작된 게시물 하나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뉴스로 포장된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가 뉴스보다 빠르게 퍼지는 배경에는 이를 클릭하고 공유하고 믿어버리는 대중의 선택이 있다. 가짜뉴스 창궐 시대에 더 필요한 질문은 '누가 가짜를 만드는가'를 넘어서 '누가 가짜를 원하는가'이다.

한국인의 뉴스 신뢰도는 30%이다(한국언론진흥재단·옥스퍼드대학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6' 온라인 설문조사). 조사 대상 48개국의 평균(37%)보다 낮다. 전체 순위 31위이며 앞뒤로 말레이시아와 크로아티아가 있다. 같은 조사에서 '내가 즐겨 보는 매체'에 한정해 신뢰도를 물으면 그 수치는 39%로 올라간다.

대중은 언론을 불신한다면서도, 자신이 고른 매체만큼은 좀 예외로 취급한다. 남이 듣고 보는 정보는 의심스럽고, 내가 선택한 정보는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 이중잣대는 확증편향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짜 뉴스가 많아서 못 믿겠다'면서도 '내가 보는 유튜브나 매체는 다른 데서 말하지 않는 진실을 말한다'는 모순적 태도를 갖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사실 검증 뒤 신뢰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기로 정해둔 신문이나 방송, 유튜브에서 하는 말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판단 순서가 뒤바뀐 셈이며, 이 같은 역전 현상은 요즘 가짜 뉴스가 뿌리내리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다.

재미난 조사 결과도 있다. 요미우리 신문의 한미일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설문조사(2024년)에 따르면 진위가 다소 의심스러운 정보를 접했을 때 '1차 정보원을 확인해 보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미국 74%, 한국 57%, 일본은 41%이다. 일본보다는 낫지만, 미국에 비해 한국인의 확인 비율이 많이 떨어진다. 이는 단순한 정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충분히 주어졌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형태다.

이쯤 되면 확증편향을 넘어서 '불인정 편향'마저 생기게 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실에 근거와 이유가 있음에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팩트체크마저 무력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팩트체크 기사를 접한 정파적 수용자들이 오히려 그 팩트체크 자체를 불신하는 현상이다. 미디어 연구자들의 연구 과제이기도 하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근거와 자료로 뒷받침된 보도라 해도 결론이 자신의 기존 입장과 어긋나면, 보도의 논리를 반박하기보다 보도 주체의 의도를 의심하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정치판에서 흔히 사용하는 '메시지를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기술'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흔한 사례로 어떤 정치 행위나 정치인의 주장을 반박하기보다 과거 사례 또는 연관성이 희박한 사례 등을 트집 잡아서 하는 인신공격을 들 수 있다. 이런 현상이 확산하면 감정적으로 편안한 정보만 골라 소비하게 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판단의 수고를 외주화하고 그 결과로 남는 것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습관뿐이다.

가짜 뉴스는 악의적인 소수가 세상을 속이기 위해 발명한 별종의 콘텐츠가 아니다. 그것은 확증편향에 길들여진 다수의 수요가 시장 논리에 따라 만들어낸 지극히 평범한 상품이다. 사려는 사람이 있으니 파는 사람이 생기고, 파는 사람이 늘어나니 사려는 사람은 더 다양한 선택지를 갖게 된다. 이 악순환에서 소비자는 피해자인 동시에 공급을 유지시키는 당사자 아닌가.

어떤 매체 또는 특정인이 조작된 가짜 정보를 내보냈다가 규제로 못 하게 됐다고 치자. 이미 현실에서는 비슷한 매체나 인플루언서들이 차고 넘치며, 사라진 공급자들도 형태와 이름만 바꿔 다시 등장한다. 아무리 공급을 틀어막아도 수요가 그대로면 다른 통로로 가짜 제품이 흘러 들어 오는 모조품 시장과 똑같다.

그렇다고 법적, 제도적 대응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장치가 없다면 악의적 공급자들의 활동 반경은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도나 규제는 공급을 관리할 수 있을 뿐, 수요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문제의 뿌리를 건드리려면 결국 각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진실을 확인하고 있는가, 아니면 믿고 싶은 것만 믿는가. 나는 내 결론과 같을 때만 신뢰하는가, 아니면 제목만 보고 반박할 준비를 하고 있나. 이 질문들은 하나같이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함을 피하는 순간 가짜 뉴스 시장의 충실한 소비자가 될 수 있다. 가짜 뉴스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가짜 소비다.

김명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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