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만주 | 0 | |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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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인근의 유서 깊은 호텔은 붉은 벽돌과 회색 석재로 단단하게 쌓인 성채 형태의 건물이었다. 건물 안 복도 끝 흰색 문 옆에는 작은 황금색 타원형 명패가 붙어 있었다. 'MacARTHUR SUITE'. 더글러스 맥아더 초대 유엔군 사령관의 이름이 새겨진 방이었다.
◇ 미 웨스트포인트 호텔 '맥아더 방'의 높은 문턱...특별한 상징성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제막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서 온 내빈은 이 방을 예약하고도 문턱에서 발길을 돌릴 뻔했다. 이 지역에서 명망 있는 한인들을 통해 어렵게 예약을 마쳤지만, 당일 프런트 데스크는 이 방이 맥아더 장군이 여생을 보낸 특별한 장소라며 "정말 특별한 게스트"만 묵을 수 있다고 거부했다. 대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제34대 미국 대통령의 기념 객실을 제안했다.
내빈은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이 맥아더 장군 관련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인사인 만큼 이 방에 묵는 일 자체가 제막식과 연결된다고 설득했다. 설명과 논쟁은 약 1시간 이어졌고, 호텔 측은 그제야 열쇠를 내줬다.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5성 장군이었고, 아이젠하워는 대통령까지 역임했다. '아이젠하워 기념 객실'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도 '맥아더 방' 입실을 제한한 모습은, 이 호텔이 맥아더의 공간에 더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 맥아더 데스크 | 0 | |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의 세이어호텔 내 '맥아더 스위트'에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 초대 유엔군 사령관의 집필 데스크./(웨스트포인트) 하만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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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스트포인트 호텔 | 0 | |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의 세이어호텔./(웨스트포인트) 하만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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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드슨강 옆 집필 데스크…절제된 '맥아더의 공간'
'맥아더 방'의 문을 열자 화려함보다 절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허드슨강을 내려다보는 창가 앞에는 유리판이 씌워진 반원형 마호가니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 안쪽에는 등받이가 높은 갈색 가죽 의자 하나가 자리했고, 옆에는 고전적인 디자인의 대형 조명 두 개가 서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집필할 때 사용한 책상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빈 책상도 하나의 역사 기록물처럼 느껴졌다.
응접 공간에는 긴 식탁과 마호가니 의자 여섯 개가 놓였다. 촛불 모양 전구가 달린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낮게 내려왔고, 창 너머로는 푸른 수목과 허드슨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흰색 몰딩과 베이지색 벽, 어두운 창틀이 어우러진 방은 작지만 정갈했다. 방 안 액자에는 강과 다리를 담은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 세이어 호텔 | 0 | |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의 세이어호텔 내부 전경./(웨스트포인트) 하만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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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이어호텔 | 0 | |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의 세이어호텔에서 바라본 허드슨강../(웨스트포인트) 하만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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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아더 장군 조카 가디너 교수 추모곡·월킬 기념비 제막
25일 뉴욕주 월킬 타운 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76주년을 맞아 맥아더 장군·제임스 밴 플리트 제8군 사령관·월턴 워커 제8군 사령관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기념비 위에는 흰머리수리 조형물이 날개를 넓게 펼쳤고, 그 아래 성조기를 배경으로 한 군인 형상이 자리했다. 기단 정면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들어간 명판이 부착됐고, 맥아더·밴 플리트·워커 장군의 흑백 사진 패널도 함께 붙었다. 붉은 장미와 흰 데이지, 청색 꽃으로 엮은 화환이 기단 앞을 채웠다.
행사에서는 맥아더 장군의 조카인 게일 가디너 예일대 교수가 추모곡 '아름다운 미국'을 헌정했다. 맥아더 사령관의 유일한 아들과 웨스트포인트 교수인 밴 플리트 사령관의 손녀는 이날 참석하지 않았다. 제막식 이후 가디너 교수와 식사를 함께 하며 맥아더 장군의 유일한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작곡 등 음악 관련 일에만 집중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디너 교수 자신도 그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일부 인터넷 기록에는 그가 뉴욕의 한 호텔에서 생활한다고 돼 있지만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한국전쟁 기념비 | 0 | | 미국 뉴욕주 월킬 타운 참전용사기념공원에 세워진 더글러스 맥아더 초대 유엔군 사령관·제임스 밴 플리트 제8군 사령관·월턴 워커 제8군 사령관 등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웨스트포인트) 하만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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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기념공원 | 0 | |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몰 내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 바닥에 '우리 국가는 전혀 알지 못한 나라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한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라고 적혀 있다./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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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아더기념관·한국전쟁 기념공원…'전혀 알지 못한 나라, 만난 적 없는 사람'의 자유 수호자들 기억
맥아더의 이름은 미국 곳곳에 남아 있다. 워싱턴 D.C.에서 버지니아주로 향하는 길에는 맥아더 대로가 이어지고, 버지니아주 포트 유스티스 기지 안에는 인천상륙작전을 기리는 '인천 빌리지'가 자리한다. 버지니아주 노퍽시에는 맥아더의 이름과 생애를 기억하는 맥아더기념관이 있다. 인천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나란히 미군의 주요 상륙작전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맥아더 동상 철거 운동과 낙서 사건이 끊이지 않고, 국민의 기억 속에서 인천상륙작전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웨스트포인트 인근 호텔이 '맥아더 방'을 쉽게 내주지 않는 장면과 한국에서 그의 동상이 훼손되는 장면은 선명하게 대비된다. 워싱턴 D.C.에서 기자가 자주 찾는 내셔널몰 내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에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전혀 알지 못한 나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나라의 부름에 응한 아들과 딸들에게 헌정한다"는 문구도 있다.
이곳에서 27일 주한미군전우회(KDVA) 주최 정전 기념행사가 열린다. '맥아더 방'의 높은 문턱과 월킬의 새 기념비, 내셔널몰에 새겨진 문구는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자유를 지킨 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오래 기억할 것인가. 기념비를 세우는 일보다 그 의미를 찾아가고 전하는 일이 기억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