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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등대지기 마치는 심규언 동해시장...미래 100년 씨앗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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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완 기자

승인 : 2026. 06. 1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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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대행 포함 14년간 동해시 행정 이끌어
쇠락하던 도시 재생, 가고싶은 도시로 바꿔
묵호논골담길-무릉별유천지-도째비골 등 조성
수소특화단지 등 미래먹거리 창출에도 공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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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의 임기를 마치고 6월말 퇴임하는 심규언 동해시장.
심규언 동해시장을 오랜동안 지켜봤다. 그는 18일 12년의 등대지기 생활을 마무리하고 조용히 등대에서 내려 온다. 민선 6기부터 8기까지 3선 연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동해시를 이끌어온 심 시장. 그는 시장직을 내려놓지만, 동해의 산업과 관광, 문화의 지형을 바꾸며 동해의 100년 미래를 그린 인물로 평가된다. 시민은 그가 숨이 멎어가던 쇠락한 산업도시에 심폐소생을 하고, 척박한 땅에 새로운 100년의 씨앗을 심어 거대한 숲으로 키워내는 과정을 목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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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묵호거리./동해문화원
◇ 쇠락하던 묵호의 눈물, 그리고 반전의 서막
그 변화의 한가운데 '묵호'가 있었다. 논골담길을 갈 때 마다 묵호등대 아래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던 어르신을 만났다. 올해 1월 세상을 떠난 그는 묵호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산증인이었다. 포항이 고향이었던 그는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다 묵호에 정착했다. "묵호에 오니 오징어와 명태, 그리고 사람으로 거리가 꽉 찼어. 철강과 석탄, 시멘트 산업이 번성했고 항만과 철도가 살아 숨 쉬었지. 일거리가 넘쳐 지폐가 길거리에 날아다닐 정도였지."

당시 인구 5만명을 넘기며 동해안최고의 산업·항만도시로 불렸던 묵호. 화물선은 밤낮없이 뱃고동을 울렸고 철길에는 화차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의 파도는 무자비했다. 산업구조가 개편되며 석탄산업은 저물었고, 기후변화는 어장을 메마르게 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한때 화려했던 묵호는 텅 빈 골목과 차가운 바닷바람만이 맴도는 잿빛 유령 도시로 변해갔다. 묵호 인구는 2500명 밑으로 떨어졌다. "이대로 묵호가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어르신의 한숨은 묵호의 절망이었다.

그러나 심 시장은 도시의 운명을 멱살 쥐듯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무너져가는 산업도시의 녹슨 뼈대 위에 '관광과 문화'라는 새로운 살을 입히는, 당시로는 무모한 설계도를 꺼내 들었다. 근현대사의 굴곡진 삶이 덕지덕지 묻어있던 비탈진 묵호 논골담길을 허무는 대신 감성적인 벽화로 위로를 그려 넣었다. 깎아지른 산골짜기와 바다를 이어 거대한 미술작품 같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를 허공에 세웠다. 대한민국 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린 덕분에, 이제 묵호 거리엔 무연탄 가루 대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MZ세대들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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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별유천지 라벤더 축제장. 관광객들이 보랏빛 라벤더 꽃을 즐기고 있다./부두완 기자
◇ 폐채석장에 핀 보랏빛 기적, 무릉별유천지
극적인 반전은 무릉별유천지다. 수십 년간 뼈를 깎아내듯 석회석을 채굴해 흉물스럽게 버려져 있던 거대한 폐채석장. 심 시장은 이곳을 바꾸려 했다. 트럭 2만대 분량의 흙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계획에 초기에는 비루한 시선과 맹렬한 반대도 따랐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공무원들과 매일같이 흙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땀방울이 모여 버려진 땅은 청옥호와 금곡호라는 거대한 에메랄드빛 호수를 품었고, 산비탈은 수십만 평의 라벤더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6월이면 가수 임영웅의 노래 '보랏빛 엽서' 속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연들이 대지 위를 수놓은 듯 보랏빛 물결이 넘실댄다. 폐광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이 프로젝트 덕분에 도시는 활력을 되찾았다. 최근 열린 라벤더 축제는 동해를 체류형 관광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 관광 넘어 미래 산업으로 시민의 삶 보듬다
그의 시야는 당장 눈앞의 관광객 유치에만 머물지 않았다. 동해의 100년을 위해 그는 산업지도를 새로 그렸다. 청정수소 저장·운송 클러스터, 수소특화단지, 수소기회발전특구 등 이른바 '수소 3관왕'을 달성했다. 또 묵호항을 보안구역에서 해제해 수변공원을 조성, 시민의 품으로 돌려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도 러시아와 일본을 잇는 환동해권 국제물류 거점으로 동해항을 지켜냈다.

2020년 KTX 개통에 맞춰 동해선 철도 연결 부터 꿈빛마루도서관과 청소년센터 건립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일상에 교통과 복지가 스며들게 했다. 이러한 성과 앞에서 심 시장은 겸손했다. 모든 공로를 "밤낮없이 머리를 맞대고 고생해 준 공무원들 덕분"이라며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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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캐릭터 해별이와 친구들이 에니메이에 출연해 동해를 자랑하고 있다.
◇ 심규언이라는 이름 대신 '해별이와 친구들' 남기며
무릉·추암·천곡·묵호·망상 등 5대 권역을 하나로 엮어 동해를 연간 1200만명이 찾는 관광도시로 만든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한참을 생각한 뒤 소박한 소망 하나를 내놓았다. "심규언이라는 이름보다 '해별이와 친구들'이 오래 살아 움직였으면 좋겠다. 동해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으면 한다.훗날 시민들이 이들을 보며, 아! 이걸 심규언 시장 때 만들었지라고 조용히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제 인생의 수고로움은 충분하다." 그에게 '해별이와 친구들'은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다. 지난 12년간 피땀으로 일궈낸 동해의 새로운 브랜드이자 자식이었다.

오징어와 명태가 도시를 먹여 살리던 시대는 저물었다. 석탄과 시멘트의 잿빛 먼지도 걷혔다. 쇠락해가던 묵호 거리에 다시 불을 켜고, 절망의 골짜기를 도째비들의 유쾌한 놀이터로 바꾸고, 흉터 가득한 폐광산에 보랏빛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 주민들은 교통체증 마저 "도시가 다시 살아난 증거"라며 반가워하고 있다. "등대지기처럼 그 과정을 지켜봤어. 도시가 다시 살아나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라던 슈퍼 어르신의 말이 생생하다. 한 시대의 등대지기는 조용히 등대를 떠나지만, 그가 남긴 씨앗들은 동해 미래 100년에 '새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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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째비골 스카이벨리./부두완 기자
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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