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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아버지가 만든 민주주의, 기본을 묻는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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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준 기자

승인 : 2026. 06. 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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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는 기성세대의 '모순'을 깨뜨리기 위한 다음 세대의 '각성'을 발판 삼아 전진해 왔다. 앞선 세대가 남긴 시대적 과오는 다음 세대가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게 만드는 촉매제였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화 세대의 성장·효율 중심주의는 독단과 불통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당위적 정의를 내세운 민주화 세대가 탄생했다.

새로운 주체가 된 민주화 세대는 '거악 심판'이라는 목표 아래 작동했다. 거대한 악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사소한 탈법이나 절차적 흠결은 대의를 위한 희생으로 용인되기 일쑤였다. 아버지 세대에 반항한 민주화 청년들이 또 다른 아버지 세대로 자리 잡자 이러한 '도덕적 우월감'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경시하는 절차적 오류를 낳기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절차를 등한시하는 사이 청년 세대는 '기본의 상실'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렸다. 과정의 경시가 공공 시스템의 나태함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물이 바로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다.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 절차에 구멍이 뚫린 비극이었다.

청년들은 과정의 투명성과 매뉴얼의 공정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를 '참정권 침해'로 규정하고 온·오프라인 광장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강하게 분노를 표출했다. 기성세대의 외침을 거드는 수준에 그쳐 '보기 드문 청년'으로 불리던 과거와 달리 담론 형성의 주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유혹도 등장했다. 그동안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외침을 정치에 이용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선관위의 행정 부실을 규탄하는 잠실 등 일부 오프라인 현장은 진영 논리와 결합하며 극우 성향의 정치 시위로 빠르게 변질됐다. 절차적 기본을 바로잡자는 순수한 문제 의식의 틈새로 음모론과 극단적 혐오가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 시위 현장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부정선거를 외치는 젊은이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양극화의 심화로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겨버린 시대를 사는 청년층의 또 다른 우울한 단면이다. 정치적 무관심과 개인주의가 극에 달하는 동시에 사회에 반항하는 반문화 성향과 음모론을 맹신하는 청년들마저 늘어나는 실정이다. 청년 세대 내부에서도 극단과 합리가 위태롭게 교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일부 청년들은 광장의 군중 심리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있다. 기성세대의 진영 논리에 대한 깊은 냉소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변질된 오프라인 시위와 거리를 둔 채 '참정권 갤러리'나 실시간 오픈채팅방 등 온라인 공간에서 부실 행정의 증거를 수집하고 선거법 조항을 대조하는 등 선관위의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데이터를 묵묵히 구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 성향'은 배제된다. 대학가의 대자보 역시 선동적 구호 대신 훼손된 절차를 조목조목 아카이빙하는 고발장 형태로 진화했다. 일부 고등학교까지 동참하고 나섰다. 이러한 '디지털 합리주의'는 기성세대의 낡은 연대 문법인 '광장의 정치질'이 더 이상 청년들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를 거쳐 등장한 세대는 광장을 넘어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절차적 기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청년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투정도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규칙과 매뉴얼이라는 최소한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다. 할아버지가 이룩한 경제적 풍요와 아버지가 만든 민주주의의 토대 속에서 자란 자식들은, 이제 아버지 세대에게 '정당한 절차'라는 민주 사회의 진정한 기본을 묻고 있다.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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