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정부가 약속했던 '손실보전'을 두고 본격적인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 타이밍에 맞춰 검찰이 4대 정유사 실무자들을 연일 줄소환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반사회적 중대 범죄행위"라며 엄벌까지 지시했지요. 특정 정유사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업계 분위기는 뒤숭숭하기만 합니다.
애초에 '유가 담합'이라는 혐의 자체도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휘발유, 경유 등 석유 제품은 품질 차이가 사실상 없는 전형적인 범용 상품입니다. 게다가 국내 기름값은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라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명확한 기준표에 따라 연동됩니다. 매일 공개되는 지표에 맞춰 원가가 투명하게 결정되는 시장 구조에서, 기업들이 굳이 처벌 위험을 무릅쓰고 모여 '비밀 회동'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과점 시장의 특성상 선도 기업이 가격을 변동시키면 타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과 마진 방어를 위해 자연스럽게 가격을 맞추는 '의식적 병행행위'가 발생하게 됩니다. 정부는 과거에도 주유소 가격 담합 등을 이유로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매겼지만, 명백한 합의 증거를 찾지 못해 대법원에서 줄줄이 패소하며 억지 잣대였음을 스스로 증명한 바 있습니다.
담합 혐의 자체가 이처럼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번 수사의 '절묘한 시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누적된 손실 규모를 산정하고 치열한 샅바싸움을 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들이닥친 사정(司正)의 칼바람이니까요. 협상 파트너를 하루아침에 담합 카르텔로 전락시키면, 정부는 막대한 손실보전금을 후려치거나 지급을 지연시킬 강력한 명분을 쥐게 됩니다. 여론의 비난 화살을 정유사로 돌려 재정 지출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려는 꼼수가 아니냐며 수사의 진의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대목입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 정책에 협조해 기꺼이 손실을 떠안은 기업에게, 정당한 보상 대신 무리한 수사를 들이미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손실 보전금 청구서를 덮기 위한 수사라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정부는 윽박지르기식 압박을 멈추고 약속한 책임부터 다해야 할 것입니다. 정책의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기업의 원죄로 둔갑시키는 나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