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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면세점은 한국이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알짜였다. 시장 규모는 2010년 4조5000억원에서 2015년 9조2000억원으로 5년 만에 두 배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처참하다. 업계 1위 롯데면세점 매출은 2019년 6조1000억원에서 2023년 3조원으로 반토막 났고, 신라·신세계·현대가 줄줄이 적자에 빠졌다. 신라와 신세계는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부산 시내점과 서울 동대문점이 문을 닫았다. 두 회사는 인천공항 사업권을 반납하며 각각 1900억원의 위약금까지 떠안았다. 최근 일부 흑자는 성장이 아니라 점포를 닫고 사람을 줄인 '몸집 줄이기'의 산물일 뿐이다.
외생적 충격도 컸다. 유커 감소, 다이궁 송객수수료 부담, 코로나, 올리브영·온라인으로의 고객 이탈이 겹쳤다. 그러나 산업의 체력을 먼저 무너뜨린 것은 제도였다. 2013년 국회는 "재벌의 독과점 특혜를 없애고 중소·중견기업에도 기회를 주자"는 명분으로 관세법을 고쳐 면세점 특허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고, 사실상 자동이던 갱신을 폐지했다. 멀쩡히 영업하던 롯데 월드타워점과 SK 워커힐점이 특허를 빼앗겼다. 혼란이 커지자, 정부는 불과 몇 년 만에 특허를 다시 10년으로 되돌리려 했다.
면세점이 돈을 벌던 힘은 두 가지였다. 회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브랜드 유치·매장·물류·MD 역량에 대한 장기 투자, 그리고 압도적 물량에서 나오는 대량 구매력(바잉 파워)이다. '나눠먹기' 입법은 정확히 이 두 엔진을 껐다. 5년짜리 특허로는 누구도 10년을 내다본 투자를 할 수 없었고, 사업권을 잘게 쪼개니 바잉 파워가 흩어졌다. 경쟁력을 키운 바로 그 요소를 제도가 거꾸로 제거한 셈이다.
반도체도 본질은 같되 그 강도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수십조원을 한 번에 쏟아붓는 초장기 설비투자, 한 세대를 앞서가는 기술 초격차, 메모리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규모의 경제, 최고 인력의 집적, 그리고 소재·부품·장비에서 설계·제조·패키징으로 이어지는 생태계. 이 다섯 엔진이 맞물려 돌아가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45%를 떠받치고, 두 회사의 법인세만 1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가 버는 돈은 '나눠 쓸 잉여'가 아니라 '다음 라운드에 다시 베팅해야 할 실탄'이다.
그렇다면 올 1월 제정된 '반도체 특별법'은 이 다섯 엔진을 더 강하게 돌려주는가. 전력·용수·도로 인프라 지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2036년까지의 특별회계 등 법의 골격은 방향은 옳다. 문제는 그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막판 심사에서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빠지며 '인력 엔진'이 약해졌고, 동시에 초과이익 공유·국민배당금 논의가 '재투자 엔진'을 정조준한다.
더 노골적인 장면은 시행령에서 나온다. 산업통상부가 마련한 시행령 제정안 초안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계획 승인 요건으로 '수도권 외의 지역일 것'을 명시했다. 경기도 전역이 수도권으로 분류되는 현행 기준상, 이는 용인·평택·화성·이천으로 이어지는 세계 최대 반도체 벨트, 곧 우리 경쟁력의 심장을 국가 지원에서 떼어 내겠다는 뜻이다. 명분은 '균형발전'이지만, 본질은 반도체가 만들어 낼 일자리와 세수를 지역끼리 나눠 갖자는 '지역 나눠먹기'다.
여기서 데자뷔가 선명해진다. 10년 전 관세법은 면세점의 집적과 규모를 '재벌 특혜'로 규정해 사업권을 잘게 쪼갰다. 지금 시행령은 반도체의 집적을 '수도권 특혜'로 규정해 투자를 지역으로 흩뜨리려 한다. 둘 다 경쟁력의 진짜 원천인 '집적'을 불공정으로 몰아 해체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균형발전이 그른 가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균형은 지역마다의 강점 산업을 키우는 '플러스섬'으로 이뤄야지, 이미 세계 최고인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쪼개는 '제로섬'으로 달성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균형발전을 누구보다 강조해 온 경기도지사조차 이 시행령안에 공식 반대 의견을 냈다.
거위가 알을 많이 낳는다고 배를 가르면, 남는 것은 한 끼 식사와 텅 빈 둥지뿐이다. 그래서 반도체의 초과이익을 나눠 갖자고 주장하는 분들께 정중히 제안한다. 그 확신이 진짜라면, 먼저 본인의 재산부터 반도체 회사 주식에 '올인'하시라. 그래서 이 산업이 계속 황금알을 낳도록 응원하고, 그 과실을 주주로서 당당히 함께 누리시면 된다. 산업의 미래를 진정 믿는 사람이라면, 거위의 배를 가르는 칼이 아니라 거위를 살찌우는 모이부터 들어야 한다.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전 한국증권학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