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형→1년 감형 거쳐 잔여 형기 면제, 전자감시 장치만 남아
친나왓 가문 정치적 최저점…"완전 은퇴 가능성 낮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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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비 생일 맞춰 발효된 사면
4일(현지시간) 방콕포스트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탁신 전 총리를 사면하는 국왕 칙령은 수티다 왕비의 생일인 3일 발효됐다. 태국에서는 왕실 기념일에 수형자를 사면하는 관례가 있다.
룻타폰 나오와랏 법무장관은 왕실 행사장에서 기자들에게 "그는 명단에 올라 있다"며 탁신 전 총리가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고 확인했다. 그는 "형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탁신 전 총리는 지난달 고령을 이유로 가석방됐으며, 1년형 가운데 3개월여가 남아 오는 9월 만기 예정이었다. 탁신 전 총리가 지난달부터 차고 있던 전자감시 장치를 제거할지는 정부 위원회가 따로 결정해야 한다.
◇ 망명과 귀국, 굴곡의 행적
탁신 전 총리는 20년에 걸쳐 태국 기득권 세력과 권력 다툼을 벌여온 인물이다. 경찰 출신으로 통신업에서 막대한 부를 일군 그는 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 잇따라 압승하며 보수 기득권층을 놀라게 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경제 회복을 이끈 그를, 농촌과 도시 빈곤층이 강하게 지지한 결과였다.
하지만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고, 2년 뒤에는 부패 유죄 판결에 따른 수감을 피해 국외로 빠져나갔다. 그는 이 판결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꺾으려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런던과 두바이, 몬테네그로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태국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의 정당들은 2023년까지 모든 총선에서 다수당 지위를 지켰다.
탁신 전 총리는 2023년 총선 직후 예상을 깨고 돌연 귀국했다. 이 귀국을 계기로 그의 프아타이당은 총선 1위였던 진보 성향의 전진당(MFP)을 배제해버리고 정부 구성에 성공했다. 당시 전진당은 왕실 모독죄 개정 등 광범위한 개혁을 내걸었는데, 이를 탁신과 프아타이당보다 더 큰 위협으로 여긴 왕당파·보수 기득권층과 탁신계가 모종의 거래로 손을 맞잡은 것이란 분석이다.
귀국 직후 그의 8년형은 국왕의 선처로 1년으로 줄었고, 그는 건강 문제를 이유로 곧바로 교도소에서 경찰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세타 타위신 총리에 이어 그의 딸 패통탄 친나왓이 이끈 프아타이 연립정부는 2년을 버티지 못하고 흔들렸고, 결국 올해 2월 조기 총선으로 이어졌다. 패통탄 내각이 캄보디아 훈센 전 총리와의 통화 유출로 휘청이던 지난해, 태국 대법원은 탁신 전 총리의 입원 사유에 근거가 없다며 그를 다시 수감하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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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사면이 그의 사법적 굴레는 풀어줬지만, 친나왓 가문의 정치적 위상은 20년 만에 가장 낮은 지점에 와 있다. 지난 2월 총선에서는 왕당파 성향의 아누틴 찬위라꾼이 이끄는 품짜이타이당이 예상을 깨고 제1당이 됐고, 아누틴이 총리에 올랐다. 프아타이당은 창당 이래 처음으로 의석수 3위로 내려앉아 연정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했다.
탁신 전 총리는 자신이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날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수십 년간 '가장 호전적인 정치인'으로 꼽혀온 그가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뗄 가능성은 낮다. 농촌 북부·동북부의 고령 지지층은 여전히 그의 든든한 기반이다. 탁신 전 총리의 측근과 후계자들도 그동안 소외 지역에 자금을 쏟아부으며 충성 세력을 다져왔다. 직접 나서긴 어렵더라도, 배후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왕'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동시에 도시 보수층들에겐 탁신은 오만과 권력 남용, 포퓰리즘 정책을 통한 표 매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문의 사법 리스크도 끝나지 않았다. 패통탄 전 총리는 훈센과의 통화 유출 건으로 기소 위협에서 아직 자유롭지 않다. 이 통화는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격렬한 국경 분쟁 직전에 이뤄지면서 태국의 민족주의 정서에 거센 불을 붙였다.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으로 2011년부터 2014년 쿠데타로 물러날 때까지 총리를 지낸 잉락 친나왓도 지금까지 망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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