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송원서의 도쿄 시선] 당신의 어려움을 대신 말해줄 정치인은 있습니까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601010000256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6. 06. 01. 18:06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2026051801000906900049961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일본에서 외국인의 존재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일본의 재류 외국인은 412만5395명으로 처음으로 400만명을 넘어섰다. 노동 현장과 대학, 지역사회 곳곳에서 외국인은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목소리는 공적 의사결정의 중심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얼마 전 한국의 한 국회의원을 만났다. 일본에서 살아오며 겪은 여러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외국인으로서 느꼈던 불편함, 여성으로서 마주했던 현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오가며 경험했던 불안정함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 국회의원은 내 말을 한참 듣더니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일본에서 그런 어려움을 대신 말해줄 정치인은 있습니까?" 순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곰곰이 돌아보니 그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일본에서 25년 가까이 살아왔다. 세금을 내고, 일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왔다. 그런데도 선거나 의회, 정책 결정과 같은 영역에 대해서는 늘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외국인이니까, 투표권이 없으니까, 내 목소리는 공론의 장에 닿기 어렵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투표권이 없다고 생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도 병원에 가고, 집을 구하고, 직장에서 평가를 받고, 아이의 교육 문제를 고민한다. 일본인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면서도 정작 자신의 목소리가 어디로 전달되는지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것은 외국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다수 시민이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간다. 선거철이 아니면 의원을 만날 기회도 드물고, 지역 의회가 무엇을 하는지, 주민의 의견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정책에 반영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시민과 '민주주의' 정치 제도인 '의회'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많이 멀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원래 훨씬 생활 가까이에 있었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어떤 제도가 현실과 맞지 않는지, 어떤 사람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과 멀어진 민주주의는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정치에서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은 거창한 이념에 앞서 생활의 문제일 것이다.

시민사회의 무관심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공적 의사결정은 점점 전문화되었고, 시민들은 그것을 자신과 관계없는 영역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육, 복지, 교통, 의료 제도는 모두 누군가의 판단과 결정의 결과다. 삶과 제도는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사회가 다양해질수록 대표성의 문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외국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들처럼 사회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의 경험이 공론장에서 충분히 다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회 전체의 과제로 연결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역할 역시 여기에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제도가 놓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것이 대표자의 책임이다. 시민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의 가능성을 찾는 과정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게 된다.

시민 역시 공공의 문제를 남의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민은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지, 지역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를 배우는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학교와 지역사회는 이러한 경험이 시작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 국회의원의 질문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당신의 어려움을 대신 말해줄 정치인은 있습니까?"

이 거대한 생활 인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통로를 알고 있을까. 더 중요한 것은 왜 우리는 그 질문을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선거 당일에만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사회의 문제와 연결해 생각하고, 필요한 목소리를 내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시민과 공론장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일,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