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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란전쟁의 변수, 레바논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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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5. 2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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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레바논 내전 종료 직후 베이루트에 근무했던 필자의 장식장에는 순백의 크리스털 말(馬) 조각상이 있다. 한때 중동의 파리로 불렸던 아름다운 도시가 동서로 나뉘어 그린라인(Green Line) 주변에는 파괴된 건물들이 남아있던 시기다. 조각상은 레바논 기독교 세력의 실력자 엘리 호베이카(E. Hobeika) 당시 수력자원부 장관이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호베이카는 1982년 세계적 뉴스가 된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사건(Sabra and Shatila massacre)을 지휘한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장이었다. 그의 경호원들은 호베이카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우리 가족과도 친했고 아이들을 귀여워해 주었다. 내전 당시 가해자며 동시에 피해자였던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쌍방은 테러와 보복을 거듭했고 호베이카도 그중 한 명이었다. 우리 가족이 일본으로 전임한 후 2002년 1월 TV 뉴스를 보던 중 호베이카와 경호원들이 차량폭탄 테러로 모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전 당시 기독교 세력을 상대로 싸운 헤즈볼라(Hezballah, 알라의 당(黨)) 수장 하산 나스랄라(H. Nasrallah) 역시 아들이 전사한 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같은 레바논 국민이지만 호베이카와 나스랄라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레바논 헌법상 대통령은 마로나이트 기독교도로, 국무총리는 순니파 이슬람교도로, 그리고 국회의장은 시아파 이슬람교도로 되어있다. 공식적으로만 17개 정파가 정치 투쟁을 하고 있어 국론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외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순니파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를 지원하는 이란 그리고 기독교파를 지원하는 이스라엘이 상당한 역할을 한다. 이란의 전적인 지원으로 세력을 키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주전력이다. 일반 국민들의 사회생활은 세속법이 아닌 종교법이 우선해 종교를 벗어난 교육이나 결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레바논 내전이 만들어낸 비극적 가족사는 2010년 캐나다 감독이 영화화한 '그을린 사랑(Incendies)'에 충격적일 만큼 묘사되어 있다.

이란-이스라엘 전쟁에서 레바논은 예멘과 함께 제2 전선 역할을 한다. 전황이 헤즈볼라에 유리하게 되면 이란은 레바논과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와 예멘을 잇는 거대한 시아파 초승달 지역 구축을 추동할 것이다. 이후에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후 철수한 예멘 소코트라섬의 러시아 군사기지와 시리아 라타키아 항구의 러시아 함대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도 2017년 인민해방군 해군 최초로 해외 군사기지를 예멘 밥엘만뎁(Bab El-Mandeb, 비탄(悲嘆)의 문) 해협 맞은편 지부티에 설치했다. 호르무즈와 함께 아라비아반도의 좌우편 양대 해협을 통제하는 장소로 어느 경우나 미국의 대중동전략에 장애물이 된다.

시리아는 1925년 프랑스에 의해 레바논과 분리된 후 두 나라를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외교관계도 갖지 않고 과거의 대시리아(Great Syria) 부활을 꿈꿨다. 그리고 2000년 5월 이스라엘군이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한 후에 시리아군도 2005년 4월 레바논에서 철수하고 비로소 대사관을 설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후원을 받는 하리리(R. Hariri) 총리가 암살된 후 유엔 안보리 결의 1559호로 외국군의 레바논 철수를 결의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시리아는 베이루트 시내 중심부에 정보사령부를 운영하면서 레바논 정치를 막후 조정했다.

주요국들이 레바논을 중시하는 이유는 근대 아랍 르네상스의 발상지답게 정보력과 인맥이 풍부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은행에 비교되듯 레바논 은행에는 중동 각국 유력인사들의 자금이 예치돼 있다. 레바논을 알면 중동이 보인다는 말처럼 중동의 주요 정보가 모인다. 20세기 동서진영 간 냉전이 치열하던 시대에는 스파이들의 주무대였다. 영국정보국 MI6의 전설적 이중간첩 킴 필비(K. Philby)도 언론인으로 위장해 베이루트를 거점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초까지 활동했다. 필비는 회고록 'My Silent War'에서 베이루트를 세계에서 가장 스파이 활동이 활발한 곳 중 하나라고 썼다.

이스라엘 역시 레바논에 대한 개입을 계속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레바논을 회색지대화하고 남부 레바논과 헤르몬(Hermon) 일대의 군사 거점 확보가 목표다. 높이 약 2700m의 헤르몬산은 갈릴리 호수의 수원지며 이후 사해(死海)로 흘러간다. 사해는 이름과 달리 오히려 죽은 물을 살려내는 중요한 산업자원이다. 이곳에서 추출되는 PH 상승제 마그네슘 원료는 일반 바닷물보다 120배 염도가 높은 순도 99.4%의 산화마그네슘이다. 화학 전문가의 설명에 의하면 공장 폐수도 음용이 가능한 정수가 가능하고 다양한 화학재료로 사용된다. 연간 수십만 톤의 고순도 산화마그네슘과 수산화마그네슘을 생산하고 세계로 수출한다.

새천년을 앞둔 1999년 12월 31일 베이루트 시내는 제야의 밤을 축하하는 병사들이 하늘로 쏘아 올리는 예광탄으로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했다. 임시 휴전 중인 레바논 정부군과 각 정파의 민병대 그리고 시리아 주둔군까지 저마다 새해의 행운과 자신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그러나 레바논의 상황은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레바논의 국론분열은 장기간 축적된 내우외환이 원인이다. 정파 간의 극단적 대결과 정치와 종교의 유착 그리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독선의 결과였다. 시대와 나라는 달라도 역사는 유사하게 전개된다. 레바논의 질곡의 현대사는 국가의 진로가 국민의 합력(合力)에 달려있음을 알려주는 교훈이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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