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법적 투쟁' 노조 '이익 분배' 투쟁 봇물
정부는 호통 대신 재개정해
망국적 갈등의 제도적 유인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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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직전에 임금·성과급 잠정 합의안을 도출한 것은 대한민국 기업 지배구조의 거대한 제도적 파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상한선 없이 장기 고정 배분하라는 초유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이 과정에서 힘의 균형을 깨뜨린 결정적 무기는 노동쟁의 대상을 넓히고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사실상 무력화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이었다. 하루만 공장이 멈춰도 수천억 원 파멸적 손해를 입는 첨단기술 기업 입장에서는, 제도적으로 면죄부를 받은 노조의 파업 위협은 거부할 수 없는 약탈적 물리력과 다름없었다.
진짜 비극은 사측이 파업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순간 시작되고 있다. 삼성전자 내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노노갈등이 터져 나오고, 주주들은 즉각 노사합의안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경영진 배임 소송을 준비하며 폭발했다. 이 역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한 '개정 상법'이라는 명확한 제도적 기반 위에서 일어난 법적 반격이다. 기업 경영진은 이제 노조의 파업 요구를 들어주면 주주에 대한 배임죄로 감옥에 가거나 천문학적인 사재를 물어내야 하고, 노조의 요구를 거부하면 노란봉투법의 비호 아래 진행되는 파업으로 기업을 파산 상태로 몰고 가야 하는 모순적 '외통수'에 갇혔다.
이러한 사법적 교착 상태와 기업 지배구조의 상호 파괴적 충돌을 조율하고 해결해야 할 주체는 사법부도, 경영진도 아닌 정부와 입법부다. 그럼에도 정부는 법 개정이라는 근본적인 치유책에는 손을 놓은 채 그저 노조와 경영진의 양보만 호소했다. 이제 삼성전자가 파업 직전에서 합의안을 도출했으니 안도할 것인가. 법이 모순되어 경영자가 어떤 선택을 해도 범법자가 되는 환경을 방치하는 것은 정부가 행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형태의 직무 유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의 성찬이 아니라, 꼬인 실타래를 푸는 과감한 법률 재개정 작업이다.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일은 노동조합법의 전면 재개정이다. 노란봉투법이 열어젖힌 '경영권 침해의 문'을 닫아야 한다. 기업의 사내유보금 책정, 영업이익의 처분 및 재투자 계획은 주주총회와 이사회에 귀속되는 본질적인 경영권이다. 이를 노동쟁의의 대상으로 삼는 파업은 원천적으로 불법임을 노동법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아울러 불법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조와 주동자들이 연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공동불법행위 원칙을 복원해야 한다. 손해를 입혀도 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기형적인 법체계 아래서는 '선을 넘는' 파업 위협이 일상화되기 십상이고 합리적인 노사협상은 불가능하다.
동시에 개정 상법의 부작용을 보완할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상법에 성문화해야 한다. 이사가 사익을 취하지 않고 객관적인 정보와 절차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회사와 주주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면 사후적인 형사 처벌이나 배임 혐의에서 면책될 수 있는 법적 안전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경영진이 파업의 공포와 소송의 족쇄에서 벗어나 소신 있게 미래를 위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나아가 강제적 분배가 아닌 자율적 협력을 유도하기 위해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여, 기업이 자발적으로 종업원지주제나 주식 기반 인센티브를 도입할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가동해야 한다. 주주들이 "세금을 내느니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주어 애사심을 고취하는 편이 이득"이라고 판단하게 만들고 노동자들도 회사의 장기적 성장을 원하도록 유도할 시장 친화적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보적으로 전성기를 누린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이 붕괴했던 역사는 반면교사다. 당시 상황은 노조의 탐욕과 당장 문제를 회피하려던 경영진의 안일함이 결탁했을 때 자본 축적과 기술 리더십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한민국 핵심 기업들이 처한 현 상황은 디트로이트의 몰락 전야와 너무나 닮았다. 다른 대기업 노조들도 일제히 '이익의 N% 분배'를 외치며 전리품을 챙기듯 기업의 미래 자본을 뜯어내려 대기 중이다.
정부와 여당은 그저 한두 번의 질타로 '제도의 힘'을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나 노조를 향해 호통치기 전에, 경영자가 법을 지키며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법적 운동장부터 평평하게 다져놓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모순된 두 법안 사이에 기업을 제물로 바친 채 구경꾼처럼 논평만 일삼아서는 역사의 법정에서 경제를 망쳤다는 판결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부는 당장 노동권과 경영권이 상호 파괴적이지 않게 공존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전면적인 재개정에 착수하라. 시장이 정부에게 허락한 인내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김이석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