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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공익 내세운 위험의 전가…양산 법기리 위협하는 ‘허가된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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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기자

승인 : 2026. 05. 21. 08:45

이철우4
이철우 전국부 기자
"이건 공사가 아니라 재난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경남 양산시 동면 법기리 현장에서 만난 주민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수십 년, 길게는 100년에 가까운 노송들이 베어진 자리에는 흙과 암반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그 아래 사면은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불안정한 지형이다.

그러나 이 장면 앞에서 "위험하다"고 책임 있게 말하는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전력공사 북부산전력지사는 "문제없다"고 하고, 양산시는 "확인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한다. 그 사이, 산은 이미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공사는 '송전선로 하부 방화선 확보'라는 목적 아래 진행됐다. 산불 예방이라는 명분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현장은 예방이 아니라 '위험의 전가'를 보여준다. 불을 막기 위해 숲을 제거했고, 그 결과 산사태라는 더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재난 가능성을 키운 셈이다.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은 경사도다. 주민들은 체감상 50도에 가까운 급경사를 말하지만, 한전 측은 16.4도라는 수치를 제시한다. 두 수치 사이의 간극은 단순한 오차로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를 교차 검증해야 할 행정은 현장 확인조차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확인 중'이라는 말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전 판단이 현장이 아닌 서류 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지반 조건 역시 심각하다. 해당 지역은 빗물에 취약한 마사토층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의 뿌리는 단순한 식생이 아니라 토사를 붙잡는 자연의 안전장치다. 이를 광범위하게 제거한 뒤 씨앗을 뿌리고 거적을 덮는 수준의 복구 계획은, 급경사 사면 안정 대책으로 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계단식 옹벽, 낙석 방지망, 배수 구조 같은 기본적인 보강조차 현장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은 우려를 키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미 나타난 '징후'다. 벌목지 인근 일부 구간에서는 토사가 유실되고 뿌리가 드러난 상태가 확인됐다. 이는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위험 신호다. 재난은 언제나 전조를 남긴다. 지금은 그 신호를 외면하고 있는 단계일 뿐이다.

이번 사안의 또 다른 핵심은 '일시 전용허가'다. 산지를 일정 기간 훼손하되 사후 복구를 전제로 허용하는 제도지만, 그 전제는 분명하다. 훼손 범위는 '사업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장은 이 기준이 지켜졌는지 강한 의문을 던진다. 주민들은 "선로 하부 정리가 아니라 산 전체를 밀어낸 수준"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 역시 "사면 안정성에 영향을 줄 정도의 벌목은 허가 범위를 벗어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재해 위험 검증 역시 도마 위에 오른다. 산지 일시 전용허가 과정에서는 산사태 가능성, 토사 유출 위험 등에 대한 사전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드러난 현장은 이 검토가 실제 지형과 지반 조건을 충분히 반영했는지 의문을 남긴다. 형식적 검토에 그쳤다면, 위험은 애초부터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지역이 상수도 보호와 연결된 구역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토사 유출은 단순한 붕괴를 넘어 수질 오염이라는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 구조 또한 흐릿하다. 한전은 "전문업체가 측정했다"고 하고, 지자체는 "확인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간다. 공기업과 행정은 절차를 내세울 수 있지만, 주민은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공익사업이라는 이름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산불 예방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 과정이 또 다른 재난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별개의 문제다. 지금 법기리에서 벌어지는 일은 공익이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명이 아니라 결단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강행'이 아니라 '중단'이어야 한다. 공정률 90%는 안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재난은 공사가 끝난 뒤 시작되기도 한다.

허가는 있었다. 그러나 검증은 충분했는가. 지금 양산 법기리는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이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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