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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청-나토, 개별 수출 넘어 ‘나토 생태계 편입’ 정조준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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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필현 국방전문기자

승인 : 2026. 05. 12. 08:08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탄약·우주 다자프로젝트 참여 요청
"IP4 인도태평양 4개국 신뢰 파트너" 선언
K-방산의 '유럽 표준'...나토 연합군 방산 체계 속으로
K-방산이 나토(이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문을 안에서부터 두드리기 시작했다.
방위사업청(청장 이용철)은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나토 방위혁신군비실장 타르야 야아꼴라(Tarja Jaakkola)와 마주 앉아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를 개최했다.

지난해 9월 벨기에 나토 본부에서 첫 회의를 열었으니 8개월 만의 재회다. 그러나 이번 자리의 무게는 전(前) 회의와 차원이 달랐다는 게 방산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단순히 탐색하는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교환하는 협상의 언어가 오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0511 [방사청 보도자료]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 개최-1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개최된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에 앞서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이 나토 방위혁신군비실장과 면담하고 있다. (왼쪽에서 2번째 타르야 야아꼴라 나토 방위혁신군비실장, 왼쪽에서 4번째 이용철 방위사업청장, 왼쪽에서 5번째 김태곤 국제협력관) / 방위사업청
◇ '나토 표준 정보(STANAG)'를 달라… 수출 구조의 근본을 바꾸려는 시도

이번 협의체에서 한국 측이 꺼내든 핵심 카드는 단 하나였다. '나토 표준 정보(STANAG·Standardization Agreement)'의 개방이다.
방위사업청은 회의석상에서 "나토가 강조하는 상호운용성을 한국 무기체계가 구현하기 위해서는 나토 표준 정보 확보가 국내 방산업체에 매우 중요하다"고 명시적으로 요구했다.
언뜻 기술적 사안으로 보이지만 방산 전문가들은 이를 K-방산 수출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려는 시도로 읽는다.

지금까지 K-방산 수출은 '국가 대 국가' 단위 계약이 기본 구조였다.
폴란드에 K2 전차를, 호주에 레드백 장갑차를, 루마니아에 K9 자주포를 파는 식이다. 각각의 계약은 성과였지만 구조적 한계도 분명했다.
나토 회원국이라 하더라도 한국산 무기가 연합 작전에서 다른 회원국 장비와 원활하게 통신·호환되지 못하면 도입 의사결정 단계에서 걸림돌이 되었다.

나토 표준을 확보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 무기가 처음부터 나토 32개 회원국의 연합 작전 체계에 들어맞는 '규격품'으로 설계·수출될 수 있게 된다. 개별 국가 한 곳을 뚫는 것과 32개국 연합군 표준 계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수출의 체급(體級) 자체가 다른 일이다.

K-방산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나토 표준 획득은 단순한 기술 규격 문제가 아니라 나토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정받느냐의 문제"라며 "이것이 열리면 한국 방산의 유럽 진출 장벽이 근본적으로 낮아진다"고 말했다.


0511 [방사청 보도자료]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 개최-3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개최된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에서 참석자들이 한·나토 간 방산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방위사업청
◇ 나토도 원하는 것이 있었다… 탄약·우주 다자 프로젝트

공을 내민 쪽이 한국뿐은 아니었다. 나토 측 역시 이번 회의에서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추진 중인 탄약·우주 분야 다자협력 프로젝트에 한국의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
이는 나토가 K-방산을 '긴급 조달처'가 아닌 장기 공급 파트너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탄약 분야는 러·우 전쟁이 촉발한 유럽 재무장(再武裝) 흐름의 핵심이다.
155mm 포탄 수요가 전시 수준으로 폭발했지만 유럽 자체 생산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미 폴란드에 탄약 생산 시설을 추진하는 등 유럽 탄약 시장을 공략 중인 상황에서, 나토 다자 프레임에 정식으로 편입된다면 단순 수출을 넘어 '나토 공인 공급망' 지위를 얻는 셈이다.

우주 분야도 주목할 대목이다. 나토는 2021년 공식적으로 우주를 제5의 작전 영역으로 선포했다. 위성 통신·조기경보·항법 체계를 회원국이 공동으로 운용하는 구조에서 한국의 우주 기술력이 기여할 공간이 생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등 국내 우주 방산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활로다.


◇ "IP4 신뢰 파트너"… 이용철 청장의 선언이 담은 전략

회의에 앞서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야아꼴라 실장과 별도 면담을 가졌다. 이 청장의 발언은 외교적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은 나토와 상호 호혜적인 방산협력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 나갈 것이며, 신뢰할 수 있는 IP4 파트너 국가로 자리매김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IP4는 나토와 협력하는 인도·태평양 4개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을 일컫는다. 4개국 중에서도 한국은 실질적인 무기 공급 능력을 갖춘 유일한 대규모 방산 생산국이라는 점에서 '신뢰 파트너'라는 표현의 무게가 남다르다.

"러·우 전쟁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나토의 안보는 더욱 긴밀히 연결되고 있다"는 발언도 눈길을 끈다. 지구 반대편의 전쟁이 나토와 IP4를 하나의 안보 공동운명체로 묶어가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다. 이 연결고리는 K-방산에게 기회이자 책무(責務)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급자가 아니라 안보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압박이기도 하다.


0511 [방사청 보도자료]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 개최-2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개최된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에 앞서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이 나토 방위혁신군비실장과 면담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타르야 야아꼴라 나토 방위혁신군비실장, 이용철 방위사업청장) / 방위사업청
◇ 30개국 대사단 방문에 이은 고위급 연속 행보… 나토의 '구애'가 달라졌다

이번 야아꼴라 실장의 방한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불과 한 달 전인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나토주재 30개국 대사단이 방한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직접 방문하고 한국 방산협력 현황을 청취했다. 대규모 외교 사절단이 현장을 둘러본 지 한 달 뒤 나토 방산 분야 고위급 인사가 뒤따라 온 것이다.
관심에서 탐색으로, 탐색에서 협상으로 나토가 단계를 밟아가는 흐름이 뚜렷이 감지된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해 12월 이용철 청장이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와 캐나다 잠수함 CPSP 사업 협력을 논의한 행보와도 맥이 닿는다. 한·영 방산 협력이 제3국 공동 수출을 전제로 구조화되듯, 한·나토 방산 협력도 단순한 수출 촉진 채널을 넘어 구조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는 궤도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 K-방산, '개별 수출'에서 '체계 편입'으로… 다음 단계를 향해

방위사업청을 포함한 한국 정부는 이번 협의체를 기점으로 나토와의 협력 의제를 지속 발굴·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단발성 수출 계약의 반복이 아니라 K-방산을 나토의 표준화된 공급 생태계 안에 제도적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KF-21의 전투용 적합 판정, 폴란드 K2 전차 2차 계약, 캐나다 잠수함 CPSP 사업 수주 경쟁, K-방산 수출 수주 잔고 100조원 돌파등, K-방산은 지금 역사상 가장 바쁜 계절을 보내고 있다.

그 한복판에서 방사청이 나토와 나눈 이번 협상은 총성 없이 치러진 또 하나의 전략 전투였다. 그 전투의 승패는 나토 표준이라는 열쇠를 누가 쥐느냐에 달려 있다.
구필현 국방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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