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지인엽의 법과 경제] 지방 발전과 차터 시티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421010006459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6. 04. 21. 15:34

중앙에 종속된 기존 방식으론 지역발전 도모 역부족
실질적 재정권과 산업정책 결정권, 지방에 이양해야
차터 시티처럼 권한 일괄위임으로 지역주도 성장할 때

2026040701000392400020161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방선거가 다가오며 지방 발전 공약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른바 '5극 3특'으로 압축되는 이재명 정부의 지방정책부터 아예 지방분권 개헌을 하자는 주장까지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5극 3특 정책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초광역 경제권과 생활권을 구축해 지역을 새로운 성장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메가시티 단위 거버넌스, 특별지방자치단체 권한 강화, 중앙·지방·민간의 초광역 협약, 초광역특별계정, 포괄보조 확대까지 제시된 수단만 보면 이전 정부들보다 한 단계 진전된 듯 보인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이 동시에 심화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시도별 분산지원만으로는 균형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의 외형이 새롭다고 해서 성과까지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균형발전 정책은 참여정부 이후 줄곧 반복되어 왔다. 이름은 국가균형발전, 지역발전, 지방시대로 바뀌었지만 공통된 한계는 늘 같았다. 지역을 살리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지역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충분히 넘겨주지 않았다. 최근 도입된 특례시(수원, 용인, 고양, 화성, 창원)와 특별자치도(강원, 전북) 사례를 보더라도 이름만 특별할 뿐 이 지역에 실제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산업정책, 재정배분, 세목과 세율, 인허가 구조, 특별회계 운용의 핵심은 여전히 중앙이 쥐고 있고, 지방은 중앙이 설계한 틀 안에서 움직이는 집행 주체에 머물렀다. 정부가 바뀌어도 지방이 자율적 성장전략의 주체가 아니라 중앙 프로젝트의 수탁자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재정의 현실은 더 냉혹하다. 2025년 기준 지방의 기준재정수요액은 141조원, 기준재정수입액은 60.7조원으로 재정 부족액이 약 81조원에 이르지만, 실제 교부세 산정액은 60.2조원에 그쳐 부족액 보전율은 74.4% 수준에 머문다. 더 큰 문제는 지방교부세가 경기 하강기에 재정안정 장치로 작동하기보다 내국세 연동 구조 때문에 함께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방의 재정자립도 낮은 편이다. 사정이 이러니 지방이 장기적 성장전략을 세우고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하기 어렵다. 재정권 없는 균형발전은 결국 예산사업의 조합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고질적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개념이 차터 시티(charter city)다. 차터 시티는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로머 교수가 제시한 구상으로, 낙후된 제도 환경을 단번에 바꾸기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특정 지역에 모국과 별도의 규칙과 행정체계를 도입해 성장거점을 만들자는 발상이다. 핵심은 단순한 경제특구가 아니라 투자자와 주민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정적 규칙, 예측 가능한 권한구조, 지속 가능한 제도환경을 한 공간 안에 집중적으로 구현하자는 데 있다. 로머 교수는 홍콩, 선전 등의 사례를 들어 이러한 제도적 실험이 결국 도시화와 성장의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중남미 개도국 온두라스는 로머 교수의 자문을 받아 차터 시티를 추진했지만, 외국 제도 이식 가능성, 정부 불신, 재산권과 공공안전의 취약성, 주권 침해 논란에 부딪혀 좌절됐다. 이 실패가 보여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성장거점은 지도 위에 선을 긋는다고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에 사람과 자본이 모이려면 최소한 중앙정부 차원에서라도 안정적인 규칙과 예측 가능한 권한구조, 그리고 끝까지 집행할 수 있는 신뢰 가능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온두라스는 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법치와 행정 역량이 작동하고 있어 차터 시티 개념과 온두라스 사례는 여전히 우리 지방정책에 응용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예컨대 산업입지, 세제, 인허가, 교육, 광역교통을 묶어 해외 선진제도를 참고하면서도 국내 헌정질서 안에서 지역이 자율적으로 설계·운영할 수 있는 '제도자치형 성장거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몇 가지 규제를 풀어주는 특구가 아니라, 일정 기간 지역이 안정적으로 책임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일괄 위임하는 방식이다. 지방이 스스로 세입을 설계하고 필요한 산업정책과 인재 정책을 결정하며, 장기간 예측 가능한 규칙 아래에서 투자와 정주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 전체가 저성장, 인구 감소, 고령화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고 지방은 소멸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균형발전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정책의 이름이 아니라 권한의 내용이다. 지방을 살리려면 지방에 사업을 더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이 중앙의 획일적 제도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규칙과 권한을 가져야 한다. '5극 3특'의 성공 여부 역시 결국 거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