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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엽의 법과 경제] 위안화 결제 유조선 통항 허용, 탈달러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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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4. 0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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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재 미국·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이란은 중국 위안화로 원유 대금을 결제한 국가의 유조선에 대해서는 안전한 통항을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원유 결제통화로서 달러가 지배해 온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탈(脫)달러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이 조치는 단순한 해상 통제에 그치지 않고 국제 원유 거래와 결제통화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달러 패권에 가해진 하나의 충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곧바로 새로운 통화질서의 도래로 읽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우선 이란의 호르무즈 장악과 선별적 통항 허용의 근거가 국제법적으로 취약하며, 국제사회의 반감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이는 새로운 규범의 출현이라기보다 전시적 레토릭과 임시적 조치의 성격이 더 강하다. 이란은 오랫동안 제재를 받아 온 탓에 주요 수출품인 석유·가스·광물을 수출하면서도 자유롭게 달러 결제를 활용할 수 없는 처지였다.

전쟁으로 자금난이 심화된 상황에서 위안화 결제 유조선의 통항을 허용하겠다는 선언은 이란이 위안화를 제재 회피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경제적 메시지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기축통화의 교체는 대개 한 번의 충격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충격이 누적되면서 기존 질서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약화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세기와 20세기 초 기축통화는 영국 파운드였다.

런던은 세계 금융의 허브였고, 영국은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와 금본위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국제결제와 준비자산 체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재정 부담과 대외 불균형이 누적되면서 파운드 체제는 약화되었고, 반대로 미국은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부상했다.

그 결과 달러의 위상은 점차 강화되었는데, 한동안 파운드와 달러가 공존하는 과도기를 거친 뒤 국제통화의 중심은 결국 미국으로 이동했다. 기축통화의 교체는 이렇게 누적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지, 어느 한 사건으로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기축통화의 지위가 무역결제보다 금융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위안화의 무역결제 비중 확대를 들어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달러 패권의 본질은 현금 달러 그 자체가 아니라 미국 국채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금융시장과 안전자산 체계에 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연기금, 보험사, 기관투자가들은 외환보유와 자산운용 수단으로 미국 국채를 선택해 왔기 때문에 달러는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석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관행은 상징적으로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달러 패권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원유 결제통화를 위안화로 바꾼다고 해서 미국 국채를 축으로 한 달러 질서가 곧바로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기축통화는 단순한 경제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깊고 유동적인 금융시장, 완전한 자본거래의 자유,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법과 제도, 위기 시에도 대규모 안전자산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은 이 점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다.

반면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지만 자본이동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고, 위안화의 태환성도 제한적이며, 국제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장기 보유할 수 있는 안전자산 체계 또한 충분히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위안화 결제가 늘어난다고 해서 위안화가 자동으로 기축통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달러 체제가 영구히 안전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최근 달러 패권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외부보다 내부에 있다.

2022년 미국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보유자산을 동결하고 달러 청산망 접근을 제한한 이후, 많은 국가는 달러가 단순한 중립적 결제수단이 아니라 지정학적 충돌이 심화될 경우 접근 자체가 차단될 수 있는 통화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여기에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겹치면서, 달러 체제의 정치적 중립성과 재정적 기초에 대한 신뢰는 이전보다 분명히 약해지고 있다.

정리하면 이란의 '위안화 결제 유조선 통항 허용' 선언은 달러 패권의 결정적 균열도 아니고, 위안화의 기축통화 승격을 뜻하는 사건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미국이 구축한 달러 질서가 더 이상 완전히 중립적이고 무조건적인 질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는 징후에 가깝다.

호르무즈에서 등장한 위안화는 탈달러의 완성이 아니라 탈달러 심리가 축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상이다.

따라서 세계가 앞으로도 미국 국채를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믿을 것인가, 미국이 달러 체제의 보편성과 재정 신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가 국제통화제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만약 달러 패권이 흔들린다면 그 출발점은 이란 같은 비달러 국가의 선언이 아니라 미국의 재정과 제도에서 찾아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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