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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호르무즈 톨게이트’는 전후 국제질서 붕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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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4. 06. 18:00

전통적 의미 전쟁 승패 사라지고 에너지 안보 체제 구축
공짜 점심 없어진 시대, 생존 전략 짜야
정치는 허망한 싸움만 하지만, 정부는 냉혹 판단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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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호르무즈 해협이 '지상 최대의 톨게이트'가 될 것 같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실질적으로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변수가 너무 많고, 당사자와 관련국들의 이해 충돌 지점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어떤 형태로 마무리되든, 사실상 중단 상태가 되든, 호르무즈 해협은 그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이번 전쟁은 단발성 지역 전쟁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 온 에너지 안보와 지정학적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거대한 지각 변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를 선언했다. 배럴당 1달러, 원유와 석유제품의 하루 운송량은 2000만 배럴 정도라고 한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25% 정도 차지한다.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로부터 얻은 '짭짤한 이익'은 그들의 수익 모델이자 생존 전략이다.

미국은 좀 더 큰 그림이 있는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SNS에 '미국의 석유를 사든가, 아니면 직접 해협으로 가서 확보하라'고 했다. 그는 노골적으로 '당신들 배는 당신들이 지키라'는 메시지를 냈다. 그의 말이 아침저녁 다르기에 단편적 언급에 신뢰를 주기는 좀 부족하다. 하지만 말의 행간을 읽고,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그어지듯 실제로 그가 취한 조치들을 이어보면 방향성은 명확하다. 경제적 이익과 거래 가능성 타진.

연초 베네수엘라를 치고, 그린란드를 식탁 위로 올려놓았으며, 나토 국가들의 국방비 인상을 압박하고, 한국, 중국, 일본 등을 콕 찍어 파병을 요구하는 등의 조치들은 미국이 살기 위해 자기들이 2차대전 후 구축해 놓은 국제질서를 변경하겠다는 뚜렷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그 중심에 에너지 통제권 확보 및 공급 조절, 이를 통한 국가 이익 극대화, 그리고 중국 목줄 죄기가 있다. 베네수엘라와 이란 석유의 최대 할인 고객은 중국이다.

다만 중국은 이번 전쟁 국면에서 너무 조용하다. 마치 미국은 이 전쟁을 잘못 시작했으며, 전쟁에서 결정적 실수만을 기다렸다 행동하려는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는 4월호 커버 스토리로 '적이 실수할 때는 절대 방해하지 마라(Never interrupt your enemy when he is making a mistake)'는 제목과 함께 흐릿한 모습의 트럼프 대통령을 보며 미소 짓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을 내보냈다.
전통적 의미에서 이 전쟁의 승패는 의미가 없다. 영토 확장이나 배상금, 굴욕적 조약 같은 것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의 변화, 이후 벌어질 전 세계적 에너지 비용 증가, 에너지 공급망 재편 등이 어떤 형태로든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게 실질적인 전쟁 승패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세계는 2차대전 이후 자유무역 체제를 유지하면서 항행의 자유를 누려왔다. 미국이 돈과 군사력을 전 지구에 투사해 유지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을 증오하든 아니든, 현실은 그래왔다. 트럼프는 이제 현상 변경을 세계에 강제하고 있다. 세계 경찰 역할을 함으로써 얻는 이익과 이를 포기(각국 비용 부담 원칙)하고 대신 에너지 통제권 확보를 통한 이익 중 명백히 후자를 택했다. '미국 주식회사'의 뚜렷한 사업 전략을 짠 것이다.

이란이 해협 봉쇄 또는 지상최대의 통행료를 징수하든, 미국이 에너지 통제권을 조절하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에게 결과는 동일하다. 에너지 공급망 안보비용이 제품 원가에 상시 반영된다. 패권 이익을 위한 미국의 무상 안보 서비스 기간은 끝났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에너지 전환,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시작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구체적으로는 에너지 공급망의 무기화로 나타날 것이다. 효율성을 좇던 글로벌 공급망은 안보와 진영 중심의 블록화로 이어질 것이다.

전쟁이 사실상 끝나더라도 이란의 강성 혁명수비대 권력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중동 리스크의 상시화를 뜻한다. 미국은 이른바 셰일 가스 혁명으로 이미 에너지 자립에 이르렀다. 중동 의존도는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번 전쟁으로 일정 정도의 원유가 인상은 미국 내 글로벌 에너지 기업 이익의 극대화가 이뤄질 기회이기까지 하다.

문제는 우리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중동 원유 수입 비중이 70%에 이른다. 에너지 수급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당장 휘발유 가격이 오르고, 대형마트의 포장용 무상 비닐 공급이 중단됐으며, 승용차 5부제 운행과 쓰레기봉투 제한 판매로 대통령의 언급까지 나왔다. 정부는 비상 대책을 논의하고 있어 개인 생활 어디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정제 기술 등 석유화학 분야 능력이 세계 최고여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정치가 바깥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희미한 동굴 안에서 허망한 명분 놓고 싸움만 해대도 정부는 정신줄을 놓지 말아야 한다. 탈(脫)호르무즈 해협 정책, 에너지 안보 동맹 구축, 공급망 확보 등 실익 중심 외교를 펼쳐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직한 야만의 시대'에 들어섰다. 공짜 점심은 정말 없다. 세상이 바뀌면 생존 규칙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바꾸거나, 그렇지 못하면 바뀐 규칙을 최대한 활용하거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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