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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경기부양 유혹 뿌리쳐야 ‘진짜 성장’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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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3. 22. 15:06

김이석고문
김이석 논설고문
김세직 신임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경기부양과 경제성장을 구별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매우 반가웠다. 필자가 그동안 꾸준히 그런 취지의 말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위적인 경기부양이 오히려 장기적인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제로 성장'의 위험이 현실화된 시점에서 과거와 같은 단기적 경기부양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장기 성장률의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진짜 성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KDI 원장의 지적은 당장의 수치에 매몰되기 쉬운 정치권과 대중에게 매우 중요한 경종을 울린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은 '경기변동(Business Cycle)' 조절과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을 동일시하는 태도다. 경기변동은 경제가 단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파동을 의미하며, 이를 관리하는 '반경기 정책(Counter-cyclical policy)'은 주로 금리를 낮추거나 재정을 풀어 수요를 진작하는 방식을 취한다. 반면 진정한 의미의 경제성장은 '자원을 더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곳으로 이동시킨 결과'가 모여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기업가들이 소비자의 기존 수요를 더 저렴하게 만족시키고 혁신적 도전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낼 때 진정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

경기변동의 경우에도 간섭받지 않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미시시피 버블처럼 경제가 비정상적으로 과열됐다가 대폭락을 일으키는 경우와 같은 경기변동은 인위적인 경기부양의 결과 엄청난 거품이 만들어졌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인위적인 신용 팽창과 적자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 투자를 위한 저축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낮아진 이자율은 기업가들의 지속 가능하지 않은 '잘못된' 투자(mal-investment)를 유발한다. 이러한 투자는 당장 그해의 경제성장률 성적표를 좋게 만들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자원 배분을 왜곡하여 결국 경제 전체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는다.

더구나 경기부양책이 우리 경제에 필수적인 '구조개혁'과 '구조조정'을 연기시키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 일어나는 불황은 사실 그동안 쌓여온 과오 투자와 비효율을 청산하고 자원을 더 생산적인 곳으로 재배치하는 고통스러운 치유 과정이다. 그러나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돈을 뿌리고 그런 청산을 지연시키는 부양책을 쓰면, 경제 시스템은 체질을 개선할 기회를 잃는다.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고 진통제만 계속 투여한다면 환자의 생명력은 결국 고갈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이 '재정건전성'을 집요하게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정건전성은 단순히 정부가 쓰는 돈을 아끼자는 차원이 아니라, 지탱할 수 없는 사업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고 '진짜 성장'을 위한 기업가적 혁신에 그 돈이 사용되도록 하자는 의미다. 김세직 KDI 원장이 언급했듯이 진짜 성장을 위해서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응한 전략, 교육의 근본적 개혁, 그리고 사회 제도의 전방위적 혁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업들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으며 막대한 투자를 요구한다. 만약 정부가 당장의 그럴듯한 경기 지표를 내기 위해 재정을 낭비하여 빚더미에 올라앉는다면, 미래를 위한 기술 투자나 구조개혁의 충격을 완화할 중장기적 정책을 실행할 동력은 사라지고 만다.

또한 재정건전성은 예기치 못한 대외 충격에 대비하는 최후의 방패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물가, 고환율에다가 관세 충격, 유가 충격 등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 놓여 있다. 재정이 탄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파고를 맞이하면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는 결국 서민과 취약계층에게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빚을 넘기지 않는 윤리적 결단인 동시에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한 선택이다.

우리는 '성장률 수치'나 '주가지수' 같은 신기루에서 벗어나 경제의 자본 구조와 생산 시스템을 혁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돈을 풀고 죄는 방식만으로는 저성장의 늪을 탈출할 수 없다. 시장 가격이 자원 배분의 신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게 하고, 규제를 풀어 기업가들이 정부의 재정에 기대서가 아니라 마음껏 혁신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0%에 접근하는 잠재성장률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당장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차갑게 들릴 수 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곳에 고용돼 있던 인력들의 재배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은 필요한 최소한으로 하는 한편, 달콤한 경기부양이라는 독배를 마시는 대신, 구조개혁의 아픔을 견디면서 혁신에 전력투구하는 것만이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길이다. '진짜 성장'은 재정의 원칙 위에서만 꽃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깊이 인식해야 한다. 당장의 인기보다는 나라의 백년대계를 먼저 생각하는 경제학자들이 왜 재정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려 하는지, 그 진심 어린 경고에 정치권과 국민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이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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