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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로] ‘경제는 보수’라는 인식마저 무너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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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기자

승인 : 2026. 03. 17. 07:27

이충재 증명사진
이충재 정치부장
"지금 국민의힘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서울시장 자리를 내주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깊은 한숨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잇따른 선거 참패와 천막당사로 버티던 시절보다 지금 상황이 더 암울하다는 것이다.

과거 보수정당은 여러 차례 정치적 풍찬노숙을 겪었다. 정권을 잃었고,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연거푸 패배해 소수 야당으로 전전하기도 했다. 그 시절에도 산업화를 이끌고 자유시장경제를 지켜온 시장경제의 파수꾼이라는 자부심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의 보수 빙하기였던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참패 때도 '그래도 경제는 보수'라는 인식만큼은 남아 있었다.

지금 국민의힘이 마주한 치명적인 위기는 표면으로 나타난 '10%대 지지율'이 아닌 '경제는 보수'라는 마지막 보루마저 정부여당에 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보수의 정체성을 떠받쳐온 경제 의제의 주도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생존 위협이다.

최근 여론 흐름에선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한국갤럽이 지난주 실시한 조사(지난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 대상)에서 이재명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66%로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긍정 평가의 배경으로 가장 많이 꼽힌 이유가 '경제·민생(20%)'이었다. 여기에 '부동산정책'이 8%로 뒤를 이었고, '유능함'(6%)과 '주가 상승(3%)'이라는 이유도 더해졌다. 여론조사 결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경제를 잘해서 이 대통령을 지지한다'가 된다.

이 흐름이 굳어지면 국민의힘은 단순히 한 번의 선거에서 지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경제 주도권 자체를 잃게 된다. 국민의힘의 중진 인사가 "서울시장 자리를 내줄 수는 있어도 '경제는 보수'라는 가치만은 지켜야 한다"고 경종을 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정부여당이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같은 반시장 입법을 밀어붙이는 동안 국민의힘은 제대로 된 저지선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보여주지 못했다. 내부 갈등에 발이 묶여, 그 흔한 대여투쟁 한번 하지 못하고 자중지란에 허덕였다. 경제를 지켜야 할 보수정당이 정작 경제라는 자기 의제를 밀어낸 셈이다.

선거 국면에 들어서면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인물과 구도, 공방이 선거 정국을 뒤덮으면 경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정부여당은 경제 성과의 이미지를 선점하고, 국민의힘은 정쟁에만 매달리는 야당으로 비칠 공산이 크다. 경제를 빼앗긴 보수정당은 더 이상 보수라고 부르기 어렵다. 단순한 선거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정체성의 붕괴다.

보수진영은 그동안 산업과 성장, 기업이라는 기반 위에서 패배를 수습하고 다시 일어섰다. 그것이 보수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이었다. 지금 국민의힘에게 더 절박한 것은 서울시장 한 자리가 아닌 '경제=보수'라는 정치적 명제를 지키는 게 아닐까. 엄살처럼 들리던 '보수 궤멸'이라는 경고가 이제는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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