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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년의 잡초이야기-74] 단종의 밥상에 오른 ‘어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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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2. 26. 18:36

(74) 어수리 그림
어수리 그림.
오랜만에 우리 영화계에 경사가 났다. 조선조 비운의 왕 단종의 유배 생활을 모티브로 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 질주 중이다. 장항준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과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가 어우러져 TV와 핸드폰에 빼앗겼던 관객의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이끌고 있다. '왕의 남자' 신드롬은 현 세태의 암울함과 혼돈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정의가 실종된 자리에는 강자가 야수처럼 으르렁대고 있고, 계략이 횡행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인간의 도리는 고전의 책갈피 사이로 사라져 가고 있다.

더군다나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 예측이 어려운 AI 파도가 덮쳐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금의 현실이 570여년 전 계유정난 시대와 흡사하지 아니한가?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무모하리 만치 우직하고 따뜻한 촌장 엄흥도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판타지를 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 단종과 고을 백성들을 잇는 연결고리로 밥상이 나온다. 백성들이 정성껏 차려 올린 음식에 '어수리'가 있다. 이름 유래도 단종이 드신 음식이라 하여 임금 어(御), 드릴 수(授), '어수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수리는 우리 산하 전역에서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어수리를 이용하여 다양한 음식을 해 먹었다. 어수리밥, 김치, 장아찌. 부침개, 떡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영화에서 폐위된 임금과 고을 백성들은 밥상을 매개로 하나가 된다.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모처럼 찾아온 훈훈한 소재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통합과 화해, 꺼져가는 휴머니즘의 소중한 불씨가 되어주기를 소망해 본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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