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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종로는 이제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몇 백 미터 정도만 존재하는 듯하다. 광화문 일대는 제법 개발이 이뤄져 번듯한 도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 종로3가와 종로5가 쪽으로 가면 을씨년스러운 구(舊)도심을 보게 된다. 을지로 쪽에 신축 빌딩이 들어서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종로는 수줍음을 품은 채 치장을 기다리고 있다. 처량한 모습으로 말이다. 종로의 시간이 멈춰 있는 사이 강남 등 다른 지역은 개발의 물결을 타고 높이 날아갔다. 잘 정돈된 강남 도심 모습은 강북 도심 종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 종로통을 바라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품는 이들이 많다.
서울시는 최근 종로3가와 5가 사이 종묘 주변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일단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시는 지난달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에 용적률을 대폭 상향하는 변경 고시를 발표했다. 시의 계획대로라면 종묘와 180m 거리에 최고 높이 145m의 고층 빌딩이 들어서게 된다. 기존에 추진되던 높이 71.9m 높이의 두 배에 이르는 고층 건물이 종묘 맞은편에 세워지는 것이다.
시의 계획은 여당과 정부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오세훈 시장이 경관을 문제 삼는 반대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역풍이 거세다. 이런 과정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마저 제기되고 있다. 국무총리가 이례적으로 현장을 찾아 고층 빌딩이 종묘 경관을 훼손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세훈 서울시장 시정 실패 정상화 TF'를 꾸리기까지 했다.
경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이젠 접어두고 오로지 개발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불편하고 낡은 도심 환경을 편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바꾸는 일에만 집중했으면 한다. 불필요한 국론 분열 대신 도심 재생의 차원에서 종묘 주변 등 종로 일대를 손질하는 데 모두가 힘을 모으면 어떨까.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자주 가봤다. 센트럴파크 주변에 들어찬 초고층 빌딩이 경관을 훼손한다면서 반대하는 여론을 들어본 적이 없다. 공원과 고층빌딩이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그림 이상이다. 호주 시드니 시내 보태닉가든 주변에도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오페라하우스를 품고 있는 시드니항을 내려다볼 수 있는 풍광 좋은 곳이다. 높은 빌딩이 풍광을 가릴 수 있겠지만 왜 빌딩을 세우느냐고 반발하는 목소리는 접하지 못했다. 자연과 조화롭게 세우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 등 대도시는 도심 위주로 개발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시민이 좁은 공간에 몰려 살다가 보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늘 나타나기 마련이다. 교통과 주거 문제가 현안이 된다. 신속하게 일터로 오갈 수 있는 교통망 확충과 관련 서비스 강화는 당국의 주 임무다. 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주거 공간을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꾸준히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당국이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다. 종묘 일대의 개발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한다.
이전의 개발독재 시절도 아니고 21세기 세계 10대 경제선진국을 자처하는 우리다. 시민이 종묘 일대를 난(亂)개발하도록 그냥 놔두겠는가. 강남 등 다른 지역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개발 콘텐츠를 토대로 종로통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면 된다. 우리의 개발 경험은 세계에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축적돼 있다. 젊은 층과 부유층이 한데 어울려 사는 도심 복합 주거 공간을 만들면 된다. 주택 공급을 늘리는 효과도 있겠다. 날로 치솟는 부동산값으로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 땅의 젊은 층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서둘러 종묘를 품은 종로통을 개발해야 한다. 누구라도 손쉽게, 편안한 마음으로 오랜 기간 넉넉한 주거 공간에서 지낼 수 있도록 꾸미면 된다. 이미 종로통에는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3호선 등이 깔려 있다. 서울 등 수도권 어디로든지 쉽게 오갈 수 있는 교통망이 구축돼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남산이 지척이고 다른 문화유산도 가깝다. 배산임수의 강북 아닌가.
서울시가 오랜 숙고 끝에 강북 도심 개발 계획을 제시했으니 신속히 공청회 등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종로 일대를 마음껏 꾸며보라고 믿고 맡겨두면 좋겠다. 모두가 지혜를 모아 강북 재생에 힘을 보태면 진정한 대한민국의 개발 명작(名作)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종묘는 걸림돌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낼 효자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