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여의로] 중대재해 기업에 엄중 경고를 날리던 정부의 ‘사고’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51120010010877

글자크기

닫기

정순영 기자

승인 : 2025. 11. 20. 17:58

정순영증명사진
정순영 기획취재부 차장
"여전히 노동 현장에서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떨어져서 죽고, 깔려서 죽고, 끼여서 죽고."

지난 7월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은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사업장 운영에 대한 경영진의 무책임을 강하게 질타했다. 취임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공장 노동자 출신 새 대통령이 사고 현장을 달려가 문제 기업의 회장과 사장을 몰아치는 장면은 국민들에게 이번엔 정말로 뭔가 달라질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후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목소리를 내왔던 이 대통령 덕분에, 대기업들은 그동안 공장과 건설현장에서 혹시 간과됐을지 모를 안전 사각지대를 찾느라 분주했으니 말이다.

지난 6일 울산 화력발전소 해체작업 중 7명의 노동자가 매몰됐다. 사고 발생 9일 만에 마지막 매몰자의 시신이 수습되면서 7명 전원이 사망한 채 구조가 마무리됐다. 노동자 사망사고는 민간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 산하 공기업도 예외가 아니었고, 중대재해 근절을 강조하던 정부의 공기업을 향한 대처 방법에 국민들의 시선이 쏠렸다. 기업의 대책 마련을 다그치던 정부에서, 본인들의 수습 방안을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순간이다. 차디찬 주검으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 노동자들을 대신해 중대재해 기업들에 엄중한 경고를 날렸던 정부, 공공의 산재사고에 대한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사고 발생 11일째인 16일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일터가 죽음의 현장이 되는 비극, 이제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사망 노동자들의 명복과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신속 수사를 통해 책임자의 지위를 가리지 않고 엄정히 처벌하겠다는 것이 이번 사고에 대한 이 대통령의 입장이다. 물론 국민 안전의 최종 책임자로서 송구하다는 말도 남겼지만, 공장 현장을 훤하게 꿰뚫고 노동자 휴식시간과 사고예방 예산 여부를 꼬치꼬치 캐묻던 이전의 목소리에 비하면 뭔가가 빠진 느낌이다. 이왕의 사과는 과감할 때 더 멋있는 법이어서 굳이 SNS의 힘을 빌렸어야 했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정 홍보 사진만 가득한 기후부 장관 페이스북을 보곤 그래도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닌가 위안을 얻었다.

물론 최고책임자로서 스스로를 질책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로베이스에서 점검하겠다고 했으니, 향후 발전사를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들의 사업장에 대한 안전실태가 얼마나 면밀히 조사되고 개선되는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사고 원인을 두고 국회에서 나온 위험의 외주화도, 김성환 장관이 말한 하청업체의 전문성 부족도 에너지 공기업 노동자들의 근로 현장에 여전히 상존한다. 정부조차 하청에 재하청을 주고 위험한 작업은 비정규 노동자에 몰아주면서, 사고가 날 때마다 민간 CEO들을 하나하나 쫓아가서 질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산재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겠나. 정부부터 고착된 판을 갈아엎고 안전한 사업장 구현의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같은 비극의 재발이 없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이지 싶다.
정순영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