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연료 자립’이냐 ‘비확산 동맹’이냐
- 트럼프-이재명 회담이 던진 전략적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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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언론 반응은 엇갈린다. 29일과 30일 미국·영국 주요 매체는 SSN 승인 자체를 '동맹 심화의 상징'으로 보도하면서도, 고농축우라늄(HEU) 필요성에 따른 비확산 리스크를 경고했다. 한국 언론은 대미 투자·관세 인하와 연계된 '빅딜' 성격을 강조하는 한편, 정상 간 "핵연료 공급·권한에 대한 후속 협의"를 공식 의제로 올렸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통상·조선·에너지·군사 패키지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연계 전략'이 부상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쟁점의 핵심으로 "'농축·재처리 권한'을 어디까지, 어떤 틀로 확보하느냐"라고 분석하고 있다. 현행 2015년 개정 한·미 원자력협정(일명 123협정)은 한국의 자국 내 농축·재처리에 '사전 포괄 동의'를 주지 않았고, 사용후핵연료의 제3국 보관·재처리, 파이로프로세싱 R&D 등 제한적·절차적 경로만 열어뒀다. 따라서 한국이 자체 농축·재처리를 제도권으로 끌어오려면, (1) 기존 협정 틀 안에서 '사례별 사전동의의 제도화'(Programmatic prior consent)에 근접한 운용 합의를 도출하거나, (2) 아예 일본처럼 '20% 미만 LEU 범위의 농축·재처리'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수준으로 협정을 재개정하는 투트랙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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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EA(국제원자력기구) 차원에서도 기준선은 명확하다. LEU는 20% 미만 U-235 농축우라늄으로 정의되며, 민수원전은 대개 3~5% 저농축 연료를 사용한다. 반면 전통적 SSN은 HEU(20% 이상, 통상 90% 근접)를 써왔다. 최근 영미권은 'HALEU(5~19.75%)' 등 대체 연료 연구를 확대 중이나, 해군용 적용은 여전히 기술·보안 이슈가 높다. 결국 한국 SSN 연료 문제는 'LEU 기반 함형' 개발·도입이라는 공학적 도전과, 미국의 '기술·연료·보안 패키지'와의 교환을 수반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협정 '운용 합의'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특정 군사적 예외나 별도 의정서의 신설 등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K-방산 기술력'은 어떻게 레버리지로 작동하나. 첫째, 한화필리 조선소를 고리로 한 미 조선업 재건 지원(MASGA 프로젝트)과 핵잠수함(SSN) 프로그램의 결합은, 한국의 고도 선체·통합체계 기술을 대미 조달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둘째, 센트러스-한수원-포스코인터의 농축 설비 확충 협력은 '연료 공급망 참여'라는 카드로 미국 내 에너지·국방 산업정책과 연결된다. 셋째, 이 조합은 한국 내 '원전-조선-방산' 수직계열화를 촉진해 국산화율·운영유지(MRO) 생태계를 두텁게 만든다. 단, 연료주권(농축·재처리) 문제는 기술력만으로 풀 수 없고, 미 의회·행정부·비확산 커뮤니티를 설득하는 외교·레짐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책 시나리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가지 요점으로 강조하고 있다.
① '기존 협정 내 권한 확보' 시나리오: 한·미 공동성명 또는 교환각서로 '사전동의의 범위·절차'를 넓히고, 한국 내 한정된 저농축(예: HALEU 범위) 시설 운영·파일럿 재처리 연구를 단계 허용받는 방식. 빠른 실행이 가능하나, 군사용(SSN) 연료는 별도 보안·공급체계에 의존할 공산이 크다.
② '일본 수준(20% 미만) 확보' 시나리오: 협정 개정 또는 부속서 강화로 광범위 농축·재처리 권한을 제도화. 연료자립은 크게 진전되지만, 미 의회 심사·비확산 파장·역내 파급(대만·호주·중국·북한 변수) 등 정치비용이 높다.
SSN 연료와 연동한 '협정 개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산업 재편' 의제를 밀어붙이는 동안, 한국이 조선·원전·반도체·배터리 등에서 '미 국내 생산·투자'로 기여하면, 미측은 연료공급·보안협정의 유연화를 교환할 유인이 생긴다. 다만 이는 정권 교체 리스크와 의회의 조약 심사, 비확산 커뮤니티의 반발이라는 3중 관문을 넘어야 한다. 현실적으론 '연료는 미 본토(혹은 파이브아이즈 체계)에서, 선체·체계는 한·미 분업' 모델이 과도기로 유력하다.
결론적으로, 'K-방산 기술력'은 협상칩이지만 해법은 외교·레짐 공학이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노선은 첫째로, 단기 실익을 중시한 '운용 합의 확대 중심'의 점진 노선, 둘째로, 중장기 '일본급 포괄 권한'으로의 도약 노선이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비확산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연료·선체·체계·정비가 이어지는 완결형 생태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경주 회담이 던진 공은 이제 한·미 실무 라인의 정교한 설계와, 국회·산업·연구계의 역량 결집으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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