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를 똑같이 사랑하려 최선"... 바람둥이 '조지섭'의 허술함을 사랑으로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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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페셜 보잉보잉'으로 11월 1일부터 내년 2월 1일까지 대학로 스타릿홀 무대에 서는 그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이 곧 호흡의 기술임을 새삼 확인하며 연습실과 무대를 오간다. 그가 반복해 꺼내는 '리듬'과 '호흡'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무대 위에서 몸의 움직임과 시선, 그리고 관객의 반응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현장의 문법이다.
이번 선택이 쉽지 않았다는 고백부터가 솔직했다. 워낙 잘 알려진 작품이고, 국내 소극장 코미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레퍼토리라 부담도 컸다. "고민이 많았죠. 그런데 대본이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서울의 별'에서 호흡을 맞췄던 손남목 연출의 디테일과 개그 코드에 대한 신뢰가 있었어요." 그가 말하는 '신뢰'는 단지 연출가에 대한 예의 바른 수사가 아니다. '서울의 별'에서 배우로서 감정의 결을 치밀하게 세운 경험, 연출이 요구한 톤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공연의 호흡을 한 호흡으로 묶어낸 기억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준석은 스스로를 가수와 배우의 경계 위에 세워 둔 채, 두 세계의 공통 언어를 하나의 단어로 정리한다. "가수의 무대가 '순간의 에너지'라면, 배우의 무대는 '호흡의 예술'이에요. 노래는 몇 분 안에 감정을 터뜨리지만, 연극은 런닝타임 동안 감정을 쌓고 관객과 함께 호흡하죠. 둘 다 진심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닮았고요." '리듬'이라는 말은 음악적 은유를 빌린 관습어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추상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대의 대사를 듣고, 반응하고, 타이밍을 잇고, 관객의 숨결에 맞춰 자신의 톤을 조절하는 과정 전체를 그는 '리듬'이라 부른다. 즉흥처럼 보이되 계산된, 계산되어 있으면서도 살아 있는, 무대의 체온과 템포가 가변적인 그곳에서만 가능한 기술이다.
그 기술이 가장 노골적으로 요구되는 장르가 바로 도어 파스(Door Farce)다. 프랑스 희극 '보잉보잉'에서 파생된 국내판 '스페셜 보잉보잉'은 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 인물들의 출입 동선이 교차하는 찰나에 정확히 웃음이 터지도록 설계된 작품이다. 배우의 말로는 더 간명하다. "도어 파스는 타이밍이 생명이에요. 한 호흡만 어긋나도 장면의 재미가 달라져요. 0.1초 때문에 웃음이 사라지기도 하죠. 그래서 연습 또 연습뿐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0.1초'는 과장이 아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 발자국이 멈추는 위치, 시선이 머무는 길이, 다음 대사의 박자까지 전부 시간의 단위로 환산되어 배우의 몸에 저장된다. 무대감이 좋은 배우란 결국 시간을 자신의 몸으로 미세하게 쪼개고 붙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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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맡은 인물 '조지섭'은 겉으로 보면 단출하다. 세 명의 연인을 동시에 만나는 남자. 다만 박준석은 그 도식을 단번에 부정하지도, 그대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보면 바람둥이겠죠. 그런데 저는 그가 세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허술하고 우유부단하지만 미워하기 어려운 인물이죠." 코미디는 도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허술함과 모순을 드러내고, 그 모순을 '사랑스러움'으로 변환시킬 때 관객은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박준석의 '조지섭'은 바로 그 설득의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를 지키기 위해 배우가 선택한 방법은 과장보다 '톤'의 미세 조정이다. 상대가 던지는 농담의 질감, 인물들이 개입하는 타이밍, 세 명의 연인이 남기는 감정의 길이를 장면마다 다르게 조절해 관객의 동의와 웃음이 동시에 나도록, 과잉을 피하면서 캐릭터의 속내가 배어나오게 한다. 허술함은 결함이 아니라 질감이 된다.
연습실의 공기는 예상대로 유쾌했다. "배우들이 다들 에너지가 좋아서 연습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타이밍을 놓치면 서로 웃을 수밖에 없죠." 그러나 그 웃음은 단지 기분 좋은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실패와 웃음이 반복되는 동안, 배우들의 호흡은 길들이기 과정을 거쳐 한 박자씩 맞아 들어간다.
배우가 말한 '연습 또 연습'은 사실 '실패 또 실패'의 다른 이름이다. 코미디의 미학은 완벽에 있지 않고, 실패를 웃음의 한 조각으로 바꾸는 집단의 감각에 있다. 그 작업을 그는 인터뷰 내내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설명했다. "무대는 모두가 함께 만드는 작업이죠. 우리의 땀과 웃음이 무대에서도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요." 코미디를 집단 예술로 말할 때, 그 '우리'라는 복수형 대명사는 이 장르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드러낸다.
배우로서의 원칙을 물으면 그는 '상대와의 호흡'을 첫손에 든다. "듣고, 느끼고, 반응하고, 전달하고. 배우와 배우의 리듬, 서로의 톤은 작업하면서 조율하는 거죠." 이 간단한 문장은 사실 연극 연기의 거의 모든 것을 요약한다. 상대의 말이 내 말의 이유가 될 때, 내 시선이 상대의 동선을 살릴 때, 관객의 숨결이 장면의 맥박을 바꿀 때, 무대는 비로소 살아난다. 코미디에서 그 진실은 더욱 선명하다. 웃음은 개인의 기술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리듬이 정확히 맞물릴 때 객석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반응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라는 주어를 선택한다. 무대는 '나'의 성취가 아니라 '우리'의 호흡으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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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정리한 그는, 다시 앞으로의 길을 이야기했다. 향후 희망 장르로는 멜로드라마와 퓨전 사극을 꼽았다. 사랑 이야기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멜로드라마는 그의 리듬 감각과 감정선 구축 능력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날 장르다. 그에 비해 퓨전 사극은 리듬을 새로 설계해야 하는 실험의 장일 것이다. 시대의 언어를 오늘의 감각으로 엮어내는 일, 연기의 속도와 신체의 무게를 새롭게 조율하는 일은 그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 된다.
도전이라는 말 앞에서 그는 주저하지 않는다. 음악에서 연극으로 넘어왔던 초기의 불안이, 지금은 '설렘'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설렘은 같은 호흡에서 태어나지만, 그 결과는 다르다. 그는 후자를 선택한다. 그는 설렘 쪽을 선택한다.
무대와 카메라의 차이를 묻자 그는 단번에 "라이브죠"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만큼은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저장 '꾹'이죠. 매회 다른 느낌이 나요. 상대 배우가 바뀌면 또 다른 감정이 살아나고, 관객과 호흡하면서 장면의 길이가 달라지기도 해요."
현장성은 연극이 영화·드라마와 견주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고유한 가치다. 살아 있는 호흡은 편집으로 다듬을 수 없다. 그 호흡을 믿는 배우만이 매회 같은 장면의 다른 결과를 받아들이고, 같은 대사의 다른 울림을 기꺼이 감내한다. 편집의 안전망이 없는 무대에서 결과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든다. 결국 연극은 언제나 공동 저작의 예술이다.
대화의 끝에서 그는 '무대'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무대란 늘 설렘이에요.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곳이에요" 인터뷰 내내 화려한 말을 피했던 사람답게, 마지막 문장 역시 단정하고 담백했다.
그 믿음이 공연의 문장으로 어떻게 환원될지, 그는 이미 대답을 준비해 둔 듯했다. "'스페셜 보잉보잉'은 정말 재미있고, 행복이 있고, 감동도 있는 작품이에요. 관객분들이 많이 웃고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컨대 이번 무대에서 그는 웃음의 타이밍을 연습했지만, 관객에게 건네고 싶은 건 '따뜻함'의 잔상이다. 웃음은 순간에 폭발하고, 따뜻함은 공연의 밖에서 오래 남는다. 그는 그 둘을 동시에 성취하려 한다. 그때 배우의 기술은 진심과 맞물린다. 진심 없는 기술은 공허하고, 기술 없는 진심은 닿지 않는다. 연습실의 '0.1초'는 그래서 도덕이 아닌 기술의 문제이면서, 기술이 곧 태도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장이다.
박준석은 자신의 호흡을 관객의 숨결에 맞대며 연기의 결을 만들어간다. 그가 맞춰가는 호흡 속에서 객석은 웃음을 만들어내고, 그 여진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도어 파스는 문이 닫히는 순간보다, 열리고 닫히는 그 사이에서 완성된다. 배우의 일은 그 틈의 시간을 정확히 세우는 일이다. 지금 그는 그 시간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 '호흡의 예술'로 돌아온 배우 박준석, 현재형의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