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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투레벨 게임이론으로 본 한미통상협상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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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0. 1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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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퍼트넘(R. Putnam)의 투레벨 게임이론(Two-level game theory)은 성공적인 국가간 협상을 위한 국제정치학 이론이다. 로버트 퍼트넘은 국제협상이 단순히 국가간 협상(레벨Ⅰ)만이 아니라, 동시에 국내정치적 제약과 이해관계(레벨Ⅱ)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다원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간 협상(레벨Ⅰ)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국내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의회 비준이 필요하므로, 국가 내부 구성원들의 이해관계 조율과 합의(레벨Ⅱ)가 국가간 협상에서도 레버리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글로벌 시장개방 및 한·미 경제협력 강화를 목표로 2006년 협상을 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FTA 체결에 대해 초기부터 농민들이 생존권을 이유로 한 극심한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2007년 서명을 한 이후 비준, 발효까지 추가로 5년이 더 소요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FTA협상에서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관세철폐 범위, 수입쿼터, 농산물 시장 개방 수준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특히 미국 입장에서는 농업시장의 즉각적인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조급하게 대처하지 않았고 FTA체결이 되더라도 국내 비준을 받지 못하면 협상이 무산될 수 있다는 점과 특히 쌀시장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을 이유로 미국 정부에게 시장개방의 폭을 최소화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농업과는 다른 섹터인 조선, 해운분야를 규율하는 미국의 존스 액트(Jones Act) 폐지를 한국 쌀 시장의 개방조건, 즉 레버리지로 제시했고, 결국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에게 한국의 쌀 시장 개방 요구를 철회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도 다시 한번 통상협상의 진통을 겪고 있다. 미국의 트럼트 대통령은 한미FTA에서 체결한 관세양허율을 무력화 하면서, 상호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선투자(Up-front)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투자 프로그램, 규모, 시기를 정하면 상대국이 이를 현금으로 조달하는 투자방식은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다. 이번 협상을 투레벨 게임이론으로 분석하자면 2006년 한미FTA 사례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는 시간을 조율하면서 한국 내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총체적으로 규합해야 한다. 관세가 25%일 때 수출이 불가한 자동차, 반도체 산업 등 공급망에 해당하는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미국 산업의 아킬레스 건을 찾아내면서 정부협상의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통화 스와프 없이 3500억 달러를 투자한다면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상황이 직면할 것"이라는 발언 역시 충분히 협상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산업연구원(KEIT) 등 국책연구기관을 통해 관세양허에 따른 양국간 경제효과분석을 병행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2025년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 발생한 미국 이민당국(ICE)의 한국인 핵심인력 300여 명에 대한 대규모 구금사태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따라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의 빠른 대응으로 미국에 전세기를 보내 전원 귀국하자, 미국 정부(주정부 포함)는 곧바로 이에 대해 재발방지를 언급하였고, 나아가 찰리 베일리(C. Bailey) 미국 조지아주 의장(민주당)은 "이번 ICE의 현대차 공장 공습은 생계를 위해, 우리 경제를 위해, 조지아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떨게 하려는 정치적 동기의 공포전략"이라며 미국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내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한미통상협상에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얼마 후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미국 법인장이 조지아주 구금사태와 관련 "미국의 한국 차에 대한 관세가 25%에서 15%로 내려갈 수 있도록 조속한 한미간 합의를 기대한다"고 표명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현대자동차의 다른 숨은 의도가 있을 수는 있지만, 협상에서 레버리지를 높이기 위한 전략은 "조지아 공장 타당성 재검토" 또는 "조지아 공장 가동 수년간 지연 가능성" 등 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미국의 트럼트 대통령이 재취임한 이후 미국 내 제조업의 부활을 위한 자국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자원민족주의는 세계경제에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으며, 한국은 현재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나라들은 우리를 엄청나게 갈취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갈취(ripping)할 차례"라고 언급하면서 미국내 지지층을 결속하며 다른 국가와의 전술적 협상력을 높이고 있는 것처럼, 한국 정부도 국익을 중심으로 한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여야를 포함한 합의를 도출하며,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미국내 우호세력들, 제3국과의 공조 등을 통해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에 차분히 임해야 할 때이다.

함상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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