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극의 완급 조절 주도하는 호연으로 재미 더해
유아인의 '돌부처' 변신 흥미로워…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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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10여 년간 조훈현 국수와 이창호 9단이 벌인 반상위 사제 대결은 한국 바둑 역사의 두 세 페이지를 장식하는 일대 사건중의 사건이다. 프로야구의 최동원과 선동렬,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이 각각 합작했던 명승부에 비교할 수 있는데 꽤 오랫동안 이어진 스승과 제자의 혈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훈현' 역을 연기한 이병헌의 말대로 '왜 아직까지 영화로 안 만들어졌지?' 의문이 들 만큼 아주 드라마틱한 실화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로 옮겨지지 못했던 까닭은 바둑이란 종목의 특성과 한계에서 찾아야 할 듯 싶다. 움직임이라고 해 봤자 눈빛과 표정, 앉아있는 자세를 바꾸는 것 정도가 전부인 탓에 연출자가 어떤 방식으로 볼 거리를 부여할지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이는 26일 개봉하는 '승부'의 제작진이나 출연진에게도 가장 큰 숙제였을텐데, 다행히도 두 주연 배우의 안정감 넘치는 호연이 극의 다소 밋밋한 모양새에 활동감을 더한다.
이병헌은 자칫 오만해 보일 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천재와 예상하지 못한 패배로 열패감에 사로잡히는 중년남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 과정에서 특유의 진지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쉼표를 찍지만, 재기를 노리는 후반부에서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승부사 기질도 함께 보여준다. 여기에 눈밑 근육의 경련만으로도 속내를 드러내는 표정 변화까지 얹어지니 안성맞춤 캐스팅의 좋은 사례다.
불미스러운 일로 지각 개봉의 빌미를 제공한 뒤 홍보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는 유아인의 '돌부처' 변신 역시 흥미롭다. 작품에 따라 연기 스타일부터 외모까지 캐릭터에 맞추는 재주는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꽤 괜찮은 배우가 왜 그랬을까'란 안타까움이 드는 이유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