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발레단이 선보인 오하드 나하린의 '데카당스' 강렬하고 유머러스한 춤판..."다 같이 춤춰요"
1. 서울시발레단_데카당스_공연사진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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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막이 오르기 전, 검은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무대에 오르더니 한참을 구르고 뛰고 꺾으며 정체불명의 춤을 춘다. 우아한 발레 동작을 선보이다가 가수 싸이의 말춤을 추질 않나, 고전적인 한국무용을 하더니 로봇댄스와 셔플댄스로 마무리하질 않나,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30분 남짓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공연 전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데카당스'는 이스라엘 거장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의 작품이다. 사전 퍼포먼스를 보며 나하린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은 춤을 춰야 합니다. 춤은 몸이라는 감옥에서 우리를 꺼내주고 자유롭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남자 무용수는 무대에 누워 다리를 찢기도 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기도 했다. 편하고 자유로운 몸짓에서 나하린의 춤에 관한 철학이 느껴졌다. 이윽고 "잊으세요, 당신이 아는 모든 것을"이라는 말과 함께 본 공연의 막이 올랐다. 나하린의 작품에서 가장 상징적인 소재인 '의자'가 등장했다. 검은 정장의 무용수들은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며 일제히 고함치는 등 강렬한 안무를 보여줬다. 구두와 옷을 하나 둘 벗어던진 무용수들은 '날것'의 느낌으로 객석에 다가왔다.
10. 서울시발레단_데카당스_공연사진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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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무대 위에서는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하며 펼쳐지는 춤부터 민속 음악에 맞춰 두 남녀 무용수가 구애하는 듯한 춤, 게이 커플로 추정되는 두 남자 무용수의 뜨거운 몸짓 등 다채로운 움직임이 펼쳐졌다. 마치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몸짓을 보여주는 듯했다.
공연 말미에 이르러서는 무용수들이 직접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들을 한명씩 이끌고 무대로 올라갔다. 무용수에 이끌려 올라간 관객들은 부끄러워하는 것도 잠시, 강렬한 비트의 음악에 맞춰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진풍경(?)이다. 할머니부터 젊은 남자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은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한동안 신나게 춤을 췄다. 오늘만큼은 무대에 오른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상상 그 이상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무용수들의 놀라운 동작도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강렬한 록비트의 음악이 심장을 두드리는 무대였다. 나하린은 이스라엘 록 그룹들과 협업하고, 직접 음악을 작곡하거나, '더 홀' '베네수엘라' 등 여러 영화음악을 편집하고 믹싱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3. 서울시발레단_데카당스_공연사진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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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나하린은 이스라엘의 바체바 무용단 예술감독을 맡아 이 단체를 세계적인 무용단으로 성장시킨 세계적 안무가다. 그의 예술 세계는 넷플릭스 시리즈 '무브'(MOVE)와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터 가가'를 통해 조명되기도 했다. '데카당스'는 그가 바체바 무용단 예술감독 취임 10주년을 기념해 자신의 대표작들을 하나로 엮은 작품이다. 2000년 초연한 이 작품은 20여년이 훌쩍 지났지만 끊임없이 진화하며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공연을 보고나니 나하린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춤이란 게 별 거 아니니, 그냥 추고 싶을 때 일어나서 추세요. 잘 출 필요도 없고, 그저 감정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