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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르로는 만점에 가까운 미장센 등 볼 거리와 뮤지컬 영화의 본분을 다하는 들을 거리가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았다. 극중 쌍두마차인 '엘파바' 역의 무대 출신 신시아 에리보와 '글린다' 역의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 등 주요 출연진의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는 물론, 소수자들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바라보는 시선까지 모든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해 보였다. 지독한 불경기에 관람료마저 오른 요즘, 한마디로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내용도 포장도 훌륭한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었다.
문제는 달라진 뒷맛이다. 예전에는 '아바타'나 '어벤져스' 1편 혹은 '다크 나이트'처럼 잘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보고 나면 열패감이 들다가도 이내 '한국 영화는 한국 영화만의 길이 있지'란 자신감으로 금세 위로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코로나 19 펜데믹을 거치는 동안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확대 보급되면서 관객들의 영화 선택 범위가 넓어지고 눈높이가 올라간데 따른 결과로, 압도적인 수준의 다양한 오락적 재미를 지닌 극소수의 영화다운 영화만 극장에서 살아남고 있는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위키드' 관람 후 더욱 피부에 와 닿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위기 의식에 불을 붙인 변화의 조짐은 당장 지난달 극장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1일 공개한 '2024년 10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극장가의 전체 관객수와 매출액은 각각 628만명과 615억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낮았다. 톱스타들의 이름값과 전편의 높은 인지도를 앞세웠던 국내외 화제작들의 흥행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인데, 비싼 티켓 가격까지 겹쳐 이제는 우리 대중이 국적을 불문하고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만 극장을 찾는다는 걸 알려주는 수치다.
OTT로 활동 무대를 옮기지 않은 몇 안되는 국내 영화인들 가운데 한 명인 류승완 감독은 지난 9월 영화 '베테랑2'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캄캄한 극장 안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함께 보며 특별한 감정을 주고받는 모습은 여전히 신비롭다. 아직도 내가 극장용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라며 "어떻게 하면 2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영화 관람의 소중한 경험을 더 많이 제공할 수 있을까로 고민하는 시간이 요즘 들어 더 늘어나고 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류 감독의 말대로 극장에서만 공유가 가능한 영화 관람의 소중한 경험, 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작품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위기의 한국 영화 산업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자, 처음이면서 마지막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